정부부채 많아 금리인상 딜레마
하반기 일본 소비자물가 살펴야
최근 외환시장에서 두드러진 움직임으로 이례적인 엔 약세를 꼽을 수 있다. 100엔당 900원 수준까지 하락했는데, 이는 아베노믹스의 핵심인 무제한 양적완화를 이어가며 빠른 엔 약세 드라이브를 진행했던 2015년 이후 가장 약한 엔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엔 약세는 특히 일본 수출 기업들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선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일본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고, 수출을 통해 달러로 벌어들인 수익을 엔화로 환전했을 때 달러 가치가 높아진 바, 엔화로 환산한 일본 기업의 수익이 늘어나는 효과 역시 함께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실적의 개선과 엔화 환산 이익금의 증가는 일본 기업의 실적 증대로 이어지고, 이는 일본 주식시장의 강세를 견인한다. 최근 나타난 일본의 주가 급등과 엔 약세는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금융 시장의 훈풍을 몰고 온 엔 약세는 향후에도 이어질 수 있을까? 엔 약세는 일본 수출 기업들에는 상당히 큰 도움을 주지만 반대로 일본 내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는 부작용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디플레이션의 나라’라고 불리는 일본이기에 수입물가 상승발 디플레이션 탈출이 더욱 긍정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기엔 일본 내 인플레이션 압력이 사뭇 부담스럽다.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3.3%를 기록하고 있는데, 최근 3.0%를 기록하면서 빠른 안정세를 보이는 미국의 물가와 대비된다. 또한 디플레이션의 나라 일본의 물가가 미국의 물가를 앞지르는 이례적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는데, 최근 OPEC+의 감산과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감에 두드러지고 있는 국제 유가의 빠른 상승세와 맞물린다면 일본 내 인플레이션 부담은 상당 기간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
부담스러운 인플레이션임에도 일본은행이 긴축으로 전환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4월 새로 취임한 일본은행의 우에다 총재는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임을 언급하면서 올해 하반기부터 일본의 물가는 빠른 속도로 안정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현 시점에는 부담스러운 물가지만, 향후 상당 수준 완화될 수 있다면 그동안 이어왔던 마이너스 금리, 장기수익률 조작, 무제한 양적완화 등의 완화 프로그램을 굳이 종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물가 상승세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특히 일본은행이 전망하듯 올 하반기부터 나타날 것이라던 일본 내 물가 안정세가 보다 느리게 현실화한다면 어떨까. 일시적 인플레이션의 레토릭하에 강한 통화완화 정책을 이어간 일본은행 역시 긴축 쪽으로 스탠스의 변화를 보일 수 있다.
앞에서 일본 내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과도한 엔화 약세에서 찾았다. 엔 화 약세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에 기인한 바 크다. 쉽게 꺾이지 않는 물가를 잡기 위해, 그리고 고삐풀린 엔화 약세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지난 잃어버린 30년을 겪으면서 쌓여온 일본 내 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이 상당히 커질 수 있다. 결국 금리를 인상하면 엔 약세와 물가 상승세는 견제할 수 있지만 일본 내 부채 부담이 커질 수 있고,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현재의 초완화적 스탠스를 이어간다면 엔 약세가 이어지면서 일본 내 물가 압력을 높여 일본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협할 수 있다.
일본 경제가 과거와 같이 극심한 디플레이션 국면에 놓여있다면 지금과 같은 과감한 통화 완화 정책이 인플레이션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일본 내 물가 상승 압력이 두드러질 때, 그리고 일본은행이 낙관하는 것과는 달리 하반기에도 물가가 쉽사리 잡히지 않을 때 일본은행은 부채와 물가 사이의 딜레마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엔 약세에 힘입어 자산 시장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의 회복세를 나타내는 일본 경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물가와 부채라는 산을 넘어야 하는데, 이 산을 넘는 과정에서 엔 약세가 둔화되는 등 의도하지 않은 변화를 나타낼 수 있다. 결국 하반기 인플레이션 안정이 일본 경제의 회복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 핵심 이슈가 될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 흐름 역시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