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적 공백에도 국제기준 따라 고객확인 대상 적용 가능
김치프리미엄 악용 소지 있어 은행 리스크 대비 차원
은행이 실명계정을 지급하는 가상자산 거래소 이용자를 대상으로 자금세탁 방지 기준을 강화한다. 정치인 가상자산 보유 논란을 비롯해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한 외국환 거래법 위반 등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3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현행법상 국내 정치적 주요인물(PEPs) 필터링에 대한 법적 의무가 없어 국내 PEPs의 거래 제한을 막지 않고 있다. 정치적 주요인물이란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와 주변 인물 등을 포함한다. 국내법상 외국인 PEPs는 감시 대상이지만 국내 PEPs는 그렇지 않아 반쪽짜리 규제라는 지적이 있었다.
올해 김남국 무소속 의원이 거래한 가상자산이 자금세탁에 이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내 PEPs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된 바 있다.
지난주 은행연합회는 가상자산 실명계정 운영지침을 발표하면서 주요 내용에 고위험 이용자에 대한 검증강화를 포함했다. 은행은 거액출금 등 고위험 실명계정 이용자로부터 ‘가상자산 거래내역 확인서’와 ‘재직증명서’ 등의 문서를 받아 거래목적과 자금원천에 대한 검증을 실시한다. 업계는 은행이 운영 정책으로 국내 PEPs에 대한 감시를 할 수 있게 되면서 규제 공백을 메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FATF가 평가할 때 우리나라가 지적받는 사안 중 하나는 국내 PEPs를 안 본다는 부분”이라며 “국내 PEPs는 고위험군으로 취급되지 않아 은행이 정책적으로라도 강화하겠다는 취지라고 본다”라고 예측했다. 국내도 AML(자금세탁방지) 국제기준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상호평가 결과를 반영해 국내 PEPs까지 고객확인 대상으로 취급할 수 있다.
국내 PEPs의 공백은 FATF 상호평가 등급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20년 FATF 상호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2등급인 ‘강화된 후속점검’이다. 평가 구분은 세 가지로 정규 후속점검, 강화된 후속점검, 실무그룹 점검대상 순이다. 한국이 속한 강화된 후속점검에는 미국, 중국, 호주 등 18개국이 속해있다.
FATF 보고서에 따르면 40개 부문에 기술평가 등급을 부여하는데 한국은 PEPs와 관련해 2번째로 낮은 PC를 받았다. 기술평가 점수는 C, LC, PC, NC 순서로 나뉜다.
한편으로는 가상자산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한 해외 송금을 막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대검찰청은 ‘김치프리미엄 악용, 가상자산 투기세력의 불법 외환유 출 사건 수사결과‘에서 가상자산 투기 목적으로 외화 13조 원을 국외유출하고, 투기세력과 함께 2500억 원의 이득을 취한 불법 외환 유출 사범 등 총 49명 기소했다고 밝혔다.
수사결과에 따르면 투기 세력들은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코인을 구입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매각하고 매각 대금을 페이퍼 컴퍼니 계좌로 송금했다. 이후, 허위 무역대금 명목으로 해외업체 계좌로 외화를 송금하는 방식을 반복했다.
업계 관계자는 “김치프리미엄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외국환 거래법 위반을 하는 세력들이 있다”라며 “이용자가 주거래 은행을 어디로 사용할지는 모르지만, 위법을 저지르는 세력이 실명계좌를 주는 거래소를 이용하면 은행 입장에서는 리크스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강화된 고객확인 실시는 정치인 이슈와 상관없다”라면서도 “가상자산을 현금화하고 해외 송금한 게 수사결과로 드러나 자금세탁 방지 강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내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