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는 규정에 불과…형사책임 배제하는 취지 아냐”
고용주가 근로자와 퇴직금 지급기일 연장에 대한 합의를 하더라도, 연장한 날짜까지 퇴직금을 주지 않는다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오석준)는 3일 퇴직급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세탁업소 대표 A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2005년 10월부터 2021년 5월까지 근무하다 퇴직한 근로자 B 씨의 퇴직금 2927만 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퇴직급여법 제9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에는 그 지급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지급기일을 연장할 수 있다.
1심은 다른 근로자 3명의 퇴직금 약 4200만 원을 합의 없이 미지급한 혐의로 A 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B 씨에 대해서는 A 씨와 ‘퇴직금 연장 합의’가 있었다는 이유를 들어 무죄로 판단하면서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퇴직금의 지급’ 또는 ‘지급기일연장의 합의’ 중 적어도 하나를 이행하도록 강제하고, 둘 중 어느 하나도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만 사용자를 형사처벌해야 한다”며 “연장 합의를 해도 사후에 지급기일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은 민사 소송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2심도 “퇴직금 연장의 합의가 있었지만, 사용자가 그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형사처벌의 대상이라고 보는 것은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반면 대법원은 “근로자가 당연히 받아야할 퇴직금을 못 받는다면 부당하게 사용자에게 예속되기 쉽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금품을 지급받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며 “퇴직급여법 제9조 본문의 취지는 법률관계를 조기에 청산하도록 강제하려는 데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퇴직급여법 제9조 단서는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지급기일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에 불과하다. 연장한 지급기일까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용자의 형사책임을 배제하는 취지라고 볼 수 없다”며 파기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