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당사자 본인이 건강할 때 이혼을 하겠다는 말을 직접 하거나 이혼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이혼을 하고자 하는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 성년후견인이 마음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까?
판례는 의사무능력 상태에 빠진 사람의 이혼 의사를 객관적으로 추정할 수 있고 민법에서 정한 이혼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후견인이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가 다 이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 혼인 관계가 파탄에 이른 상태이지만 여러 이유로 이혼을 하지 않고 사는 부부들도 많다.
바람을 핀 남편이 이혼 소송을 제기해도 아내가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처럼 당사자에게 이혼 의사가 있는지 여부는 다른 사람이 판단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런데 판례는 의사무능력 상태에 있는 사람의 이혼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면 성년후견인이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혼 의사처럼 매우 개인적인 의사를 다른 사람이 추정해 판단할 수 있는지 필자는 의문이 든다.
최근 성년후견인의 권한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A가 행인 B를 치었는데, 이 사고로 B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C가 B를 위한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됐다. C는 A로부터 4000만 원을 합의금으로 지급받고 B를 대리해 A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써주었다. 성년후견인이 의식불명 된 사람을 대리해 합의서를 써줄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됐는데, 대법원은 성년후견인은 이러한 합의서를 써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재판으로 이러한 판결을 내렸는데, 보통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에만 전원합의체 판결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법원에서도 성년후견인이 과연 어느 범위까지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치열하게 다투어 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실제 이 사건 판결문을 보면 대법관 5명은 이러한 결론에 반대해 성년후견인이 합의서를 작성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의 다수 의견이 성년후견인이 합의를 대신한 후 없다고 본 중요한 이유는 범죄 피해를 입은 피해자의 합의 의사는 흠이 없이 진실해야 하고 명백하고 믿을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하므로 본인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반면 성년후견인이 합의를 대신 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의 소수 의견은 성년후견인이 합의를 대신 할 수 있어야 오히려 피해자 보호에 더 유리하고, 성년후견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사회가 고령화 되며 치매 등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이 늘고 있고 성년후견 제도의 활용도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혼이나 범죄 피해 합의를 성년후견인이 대신 할 수 있는지와 같이 성년후견인의 권한과 능력이 어디까지인지에 관하여 정리되지 않는 부분들이 아직 많다.
입법을 통해 정리돼야 할 내용들도 있고 여러 사례들을 통해 법원의 입장이 확인되겠지만 아직은 사례들이 많지 않아 전문가들도 확답을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성년후견인이 할 수 있는 일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후견을 감독하는 법원의 허가를 구해서 처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