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지난해 8월 16일부터 올해 7월 31일까지 약 1년간 악성 사기 사건을 수사한 결과 3만9777명을 검거했다고 어제 밝혔다. 이 중 5087명이 전세사기 혐의다. 참담하고 개탄스럽다. 대한민국은 수사 당국이 작심하고 포승줄을 내밀면 전세사기범이 무더기로 잡히는 나라인 것이다. 지난해에는 전세사기로 884명이 검거됐다. 올해 1~7월엔 4203명이다.
적발 건수 중에는 주택 1만1854채를 보유한 14개 무자본 갭투자 조직과 전세자금 788억 원을 가로챈 21개 전세자금 대출조직이 포함됐다. 대한민국 사회가 한눈을 파는 사이에 전세사기가 조직범죄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형국이다. 전세사기망이 전국에 거미줄처럼 깔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의식주 없이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전세사기는 서민 가계를 곤경에 빠뜨리는 악성 범죄일 뿐만 아니라 민생의 뿌리를 들쑤시는 반사회적 작태다. 지난 상반기 중 전세사기를 당한 한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기에 앞서 어머니에게 2만 원만 달라고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 피눈물 나는 사연이다. 전세사기 혐의를 받는 5087명의 뒤를 캐보면 이런 사연이 고구마 줄기처럼 나올 것이다.
전세사기는 단호히 추방해야 할 독버섯이다. 경찰은 전국 시·도청에 중요경제범죄전담수사팀을 신설하고, 서울·경기 남부·부산 등 금융권이 집중된 지역에 우선 금융범죄전담수사팀을 편성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 세상엔 절대로 물러서서는 안 되는 전선이 있다. 전세사기 같은 악성 범죄와 싸우는 전선이 바로 그런 종류다. 경찰은 불퇴전의 의지로 역량을 모아 사기범을, 사기조직을 소탕해야 한다. 사법부 책임도 무겁다. 일벌백계의 자세로 임해 악성 범죄의 근절에 힘을 보태야 한다.
단속만이 능사가 아니다. 정부 역할도 살필 일이다. 사적 금융거래인 전세에 정부가 개입해 대출을 주선하고 보증까지 서고 있다. 현행 시스템이 타당한지, 지속 가능한지를 다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전세대출제는 세입자를 돕는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적용 대상과 한도가 확대돼 결국 총체적 부작용과 역기능이 선의의 정책 효과를 압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셋값 상승을 부추기고, 부동산 거품을 키우는 부정적 측면이 너무 큰 것이다. 전세보증제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 전세보증 및 반환사고가 급증하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존립까지 위태롭게 됐다. 올 상반기 보증사고 금액만 1조8525억 원에 달했고, 같은 기간 HUG가 집주인 대신 갚아준 대위변제액도 1조3349억 원을 기록했다. 결국 무고한 전국 납세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것이다.
무주택 서민을 돕는다는 각종 제도가 외려 서민을 괴롭히는 악재로 변질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기 일쑤다. 갭투자의 온상이 되고 전세사기의 먹잇감으로 오용되는 관련 제도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더 늦기 전에 퇴로를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