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는 사실상 거래소와 보관·관리업자 두 가지 유형만 존재하는 상황이다. 델리오 역시 지난해 한국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가상자산 보관·관리업으로 가상자산사업자(VASP) 인가를 획득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별도 규정이 없는 가상자산 예치·운용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사실상 델리오의 VASP 취득과 예치·운용업 사이에는 별다른 관계가 없지만, 델리오 측은 자신들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유일한 가상자산 예치업자라고 광고를 해왔다. 많은 델리오 이용자가 ‘당국 책임론’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다수 이용자는 “VASP 인가 업체라 믿고 자금을 맡겼다”고 토로했다.
다만, FIU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내에서만 권한 행사할 수 있어,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 예치업 등에 대해서는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FIU에 따르면 VASP 인가는 3년마다 갱신해야 하고, 이때 특금법 제7조3항에 따라 VASP의 신고를 불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를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하지 못한 자 △실명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정을 통하여 금융거래등을 하지 아니하는 자 등으로 규정하고 있어, 정보보호와 자금세탁 관련한 위반 사항에 대체로 국한돼 있다.
이와 관련해 FIU 관계자는 “VASP 인증 시 (최대한) 내부통제 구축이나 독립적인 감사 체제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자금세탁 방지가 주 업무다 보니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용자 보호법이 시행되면 조금 나아지긴 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제도가 미비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관련 법률이 만들어져야 앞으로 비슷한 문제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6월 국회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통과됐지만 각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세세한 분류나 관련 규제 내용 등은 빠져있다. 국회는 이번 법안에는 불공정 거래 등의 내용만을 담고, 업계 전반에 대한 내용은 2차 법안에서 다루겠는 입장이다.
다만 국제적으로도 벤치마킹할 법안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 국회가 앞서 관련 법안을 제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가장 선제적인 포괄적 규제법으로 평가받는 유럽연합(EU)의 암호자산시장법(MiCA)에서도 가상자산 예치업에 대한 정의 및 규제는 빠져있다. MiCA는 가상자산 서비스를 총 3개의 클래스(Class)로 나누고 각 서비스의 내용이나 최소 자기자본 요건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하루와 델리오 같은 가상자산 운용 예치 서비스는 이 세 클래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에 이미 존재하는 자본시장법을 적용하자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리플 등 가상자산에 대한 증권성을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예자선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22일 국회에서 진행된 가상자산 관련 토론회에서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행위를 적용하면 불법, 부정거래만 입증해도 손해배상 청구와 처벌이 쉬워진다”고 말했다. 24일 강성후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장 역시 “가상자산 운용사업은 규율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현안”이라면서 “자본시장법에 의한 관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러한 자본시장법 적용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한진 김앤장 변호사는 최근 한 가상자산 콘퍼런스에서 “단지 거래 규모가 크고 많은 사람이 몰린다는 이유로 (전통) 금융 상품과 동일한 규제를 한다고 하면 오류를 범할 수 있게 된다”면서 “기본법을 만들 때 차분하게 논의를 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법적으로 디지털 자산의 개념을 확정하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이상한 플레이어들만 계속 남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