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고금리 정기예금 만기 도래 시작
1년 전 채권시장 경색 재발 우려도
저축銀 하반기 유동성 악화 가능성도↑
1년 전 발생한 레고랜드 사태로 치솟았던 5%이상의 고금리 정기예금 117조 원의 만기가 돌아온다. 금융사들이 만기 도래한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또 다시 예금금리 경쟁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데다 은행채 발행을 늘릴 수 밖에 없어 채권 시장도 다시 요동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2금융권의 경우 유동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에서 11월까지 3개월 새 불어난 예금은행의 정기예금은 113조6719억 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저축은행에서는 3조8968억 원이 늘었다. 전년동기 예금은행과 저축은행의 수신 증가액이 각각 24조2890억 원, 5조5858억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머니무브(대규모 자금이탈)’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작년 9월 28일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금융권에서 발생했던 고금리 경쟁 탓이다. 당시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사업에 대해 사실상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이후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자 채권시장 경색을 우려한 금융당국이 은행의 자금조달 방법 중 하나인 은행채 발행을 자제하라고 요청했다.
은행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예금금리 인상에 나선 배경이다.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정기예금 금리는 지난해 9월 3.35%에서 11월 4.3%로 0.95%포인트(p) 올랐다. 은행 금리 상승으로 자금이탈을 우려한 저축은행들도 덩달아 금리 인상 경쟁에 뛰어들었다. 같은 기간 저축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3.77%에서 5.82%로 2.05%p 급등했다.
시장에서는 고금리로 끌어들인 정기예금의 만기가 도래하면 자금시장이 경색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은행들이 만기가 돌아온 예금을 고객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늘리면 채권 시장 전체가 불안해질 수 있어서다.
안소영 한화증권 연구원은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정기예금의 잔액과 금리의 성장세는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두드러졌다"며 "최근 은행채 발행 급등이 우려되는 이유는 대출 증가와 지난해 하반기 고금리에 판매했던 정기예금 만기 재수신"이라고 지적했다.
저축은행의 유동성 문제도 우려되는 사안이다. 높은 금리의 정기예금 만기가 돌아오면 저축은행 업계에서 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10대 저축은행의 정기예금 중 지난해 11월 30일부터 올해 11월 30일 사이에 만기가 도래하는 정기예금의 규모는 총 39조2911억 원에 달한다. 1년 전 27조5423억 원보다 42.7% 증가한 수준이다.
문제는 저축은행업계가 자금이탈 방지를 위해 예금금리를 올릴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상반기에 1000억 원에 달하는 적자가 나면서 특히 중소형 저축은행 중에서는 수신금리를 올릴 여력이 없는 곳이 대다수다.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 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어 대출도 적극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하반기 저축은행의 유동성 지표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은행권과 상호금융권 등 전 금융업권이 금리 인상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은행권에서는 최고금리가 4%를 넘는 예금상품이 재등장했다. 새마을금고와 신협 등 상호금융권에서도 5%대 고금리 예적금 특판 상품이 쏟아지는 중이다.
다만,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안 연구원은 은행채 발행이 증가할 수는 있지만, 과도하게 급등해 채권 시장 전체에 영향이 전이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그는 "정기예금 수신은 지난해 12월부터 다시 하락했다"며 "하반기 은행채 만기도래액은 9월을 제외하고는 지난해보다 적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