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부동산 PF 악몽…폭풍전야는 ‘현재진행형’[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사건 1년]②

입력 2023-09-10 12:00수정 2023-10-0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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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위험노출액 (나이스신용평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부실, 높은 가계부채비율 등은 향후 정책운용 선택의 폭을 좁히고 소비와 시장심리를 억누르는 지속적 요인이 될 것을 경계해야 한다”(7월 금통위 의사록, A위원)

한국의 부동산금융발 시장 불안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1년 전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사태 이후 정부와 한국은행의 유동성 지원, 금융당국의 지원책으로 시장이 잘 버티고 있지만, 자금시장에서는 여전히 냉기류가 흐르고 있고, 수도권을 제외하면 집값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도 우려 수준이다. 중소·중견 건설사 중에는 운영자금을 구하지 못하는 곳도 많다고 한다.

국내발 ‘9월 위기설’은 지나친 걱정일 수 있지만, 미국과 중국발 부동산 불안이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가 많다. 금융시스템을 다시 들여다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월 위기설’에도 증권사 PF 사업 ‘스멀스멀’

10일 본지가 국내 주요 증권사 22곳의 올해 상반기 신규 부동산 PF 사업 현황을 조사한 결과, 신규 사업을 진행한 증권사들이 상반기에 새로 펼친 PF 대출 사업 규모는 약 2조1772억 원으로 집계됐다.

신규 PF 사업 규모가 가장 큰 증권사는 1조 원을 넘겼다. 전체 신규 PF 사업 규모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규모다. 신규 PF 사업 규모가 가장 작은 증권사는 30억 원대였다.

이처럼 일부 증권사들이 새로운 PF 사업에 뛰어든 것은 PF 대출 증가와 연체율 급증에 대한 우려 분위기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지난해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PF 채무불이행 사태를 시작으로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발생했을 당시, 주요 증권사들의 부동산 PF 사업은 사실상 중단에 가까웠었다.

증권사들이 신규 PF 사업을 펼친 이유는 사태가 정점을 지난 이후 하반기 소강상태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해서로 풀이된다. 미국의 긴축 우려 완화와 금융당국의 제도적 대응 등이 이어지자 조만간 위기가 종식할 것으로 본 셈이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올해 1월 한은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사실상 종료되면서 금융 불안이 더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벨트를 채워둔 상황”이라며 “코로나 대출의 만기 연장이 2025년 9월까지 3년간 연장 가능하다는 점, 수요 회복에 기반한 아파트 가격 상승과 이번 달 부동산 공급 활성화 방안 발표 예정으로 9월 위기설은 확대 해석된 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여전히 ‘9월 위기설’에 대해 우려 중인 의견이 과반이다. PF 대출 관련 신규 사업이 없는 증권사도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위기설 이후 기업부문(IB) 부문은 줄이고, 세일즈앤트레이딩(S&T) 쪽에 집중하는 분위기”라며 “진행 중이던 PF 사업을 중단할 수는 없어서 이를 관리·유지하는 정도”라고 했다.

고금리 예금 만기 도래…은행권도 ‘휘청’

은행권도 위기가 지속 중이다. 지난해 9월 부동산 PF 사태 당시 은행권이 고금리를 내걸고 대규모로 유치했던 정기예금의 만기가 다가오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이후 3개월 사이 늘어난 은행권 정기예금은 116조 원을 넘어선다. 지난해 부동산 PF 사태로 채권 시장이 얼어붙자, 은행권이 자금조달을 위해 고금리를 내걸고 예금 유치전에 나선 결과다.

문제는 올해 만기가 돌아오면서 은행들이 고금리 예금을 재유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은행권이 정기예금 재유치 경쟁에 뛰어들면 조달금리가 상승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고객에게 만기가 돌아온 예금을 돌려주더라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이 경우 은행은 자금조달을 위해 은행채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시중 자금을 끌어당기다 보면 채권 시장이 지난해처럼 다시 출렁일 공산이 크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고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사건까지 겹치면서 은행 예금금리가 급등하고 예금유입액이 크게 늘었었는데,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예금만기가 대거 도래해 서민금융기관을 포함한 은행권 전반의 수신환경 및 은행채 발행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며 “가을부터 연말까지는 은행권 조달환경에 대한 밀착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했다.

‘9월 위기설’ 진화 나섰지만…“리스크 여전”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대응에도 당분간 부동산 PF에 대한 불안은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속 중인 고금리 환경에 ‘주택 착공 부진→공급 위축→거주비 증가 예상’로 인한 부동산 시장 둔화, 심지어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변수까지 더해져 국내 PF 관련 우려는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국에서는 대주단 협약을 통해 만기를 연장하는 등의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면서도 “금융권 내에서 아무리 조치를 취해도 부동산 PF 부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위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4월 부동산 PF 우려에 대응해 금융사들이 참여하는 ‘대주단 협의체’를 가동했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저축은행권의 PF 대출 횡령에 이어 시장을 둘러싼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구조가 복잡하고 다수의 주체가 참여하는 PF 대출의 특성에 기인한다”며 “당분간 PF 시장의 불안은 지속될 전망”이라고 했다.

취약한 금융시스템 점검할 필요있어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사건'을 꼽씹어보며 국내 금융시스템의 취약점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사의 자산 규모가 아무리 커도 일시적인 유동성 경색이나 신뢰도 저하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9월 위기설’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변동금리 중심의 대출 구조 속에 취약한 자영업자·중소기업 대출은 대표적인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은 1014조2000억 원에 이른다. 한국은행은 올해 0.5%포인트의 기준금리 인상을 전제로 취약 자영업 대출자의 부실위험률이 16.8%까지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중소기업 대출 역시 약한 고리다. 신한은행을 제외한 국내 4대 은행의 중소법인 평균 연체율은 지난해 12월 말 0.29%에서 6월 말 0.43%로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시장 상황이 나빠져 금융 시스템이 흔들린다면 기업 신용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고, ‘제2의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사건’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적잖은 기업들은 여전히 자금조달시장에서 외면받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회사채 발행 규모는 15조4282억 원이다. 전월 대비 34.4% 감소했다. 높아진 금리 탓이다. 투자보다 빚 갚는 용도가 많았다. 일반 회사채 중 차환 목적의 발행 비중이 63.0%에 달했다. 지난 6월(52.5%)보다 늘었다. 대기업이 아니면 투자자들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일반 회사채의 81.6%가 ‘AA’등급 이상이었다.

시장 한 관계자는 “불안을 부추겨서는 안 되겠지만, 금융시스템이 흔들리면 가계는 물론 기업, 더 나아가 한국경제를 ‘퍼펙트 스톰’으로 내몰 수 있다”면서 “국내 금융사의 주요 리스크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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