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 돈 없어 연구생 못 구해…반강제 휴학도, 분위기 흉흉
“여기(과제)서 떨어지면 예산 줄어들 수 있어. 열심히 해.” “앞으론 돈을 아껴서 연구해야 할 거야."
카이스트 박사과정 대학원생 A 씨가 속한 연구실의 교수는 요즘 부쩍 비용을 언급한다. 그동안 연구를 열심히 하라는 격려는 들어봤어도 연구 비용을 줄이라는 지시는 처음이다. 연구를 잘하려면, 샘플 분석을 많이 할수록 좋고, 그러려면 넉넉한 예산이 필요한데 돈을 아끼라니 난감하다. 그러면서도 A 씨는 교수의 뜻에 공감한다. 두세 달 전부터 A 씨의 연구실과 대학원 안에서는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터다.
본지가 5~6일 과학기술원 소속 대학원생들과 한 인터뷰에서 대학원생들은 “당장 월급이 줄어든 게 아니라 즉각적인 체감이 어려운 부분이 있고, 아직 대학원생이라 조심스럽다”면서도 R&D 예산 삭감으로 인한 우려에 대해 이같이 입을 뗐다.
대학원생들의 여건은 이미 녹록지 않다는 게 이들의 중론이다. A 씨에 따르면 통상 대학원생들은 박사과정 국비 장학생 기준, 학비 면제 외에 한 달에 120~150만 원 정도를 급여를 받는다. 1인 가구 최저생계비(약 125만 원) 수준을 받는 셈이다. 카이스트 석ㆍ박 통합 과정 대학원생 B 씨는 “놀랍게도 카이스트 내에는 이미 돈이 없어서 학생을 못 받는 연구실이 있고, 심지어는 돈이 없어서 휴학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명목 하에 조교를 하더라도, 돈이 없다는 이유로 교수님께서 회수해 가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 4대 과학기술원의 예산은 일제히 줄어든다. 감소율은 각각 울산과학기술원 14.5%, 한국과학기술원과 광주과학기술원 12.7%, 대구경북과학기술원 6.2%다. 그럼에도 대학원생들은 과학기술원의 예산이 줄어드는 것보다 국가 R&D 예산이 줄어드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가 R&D 예산 감소가 이들의 상황을 더 악화할 거란 우려다. 학교에서 받는 돈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나라에서 수주한 과제를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기 때문이다. 유니스트 석ㆍ박 통합 과정 대학원생 C 씨는 “예산이 삭감된다 하면 가장 영향을 받는 건 대학원생일 것”이라면서 “이미 대학원생은 임금 문제 등을 겪고 있는데, 예산 삭감 자체는 곧 과제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결국 대학원생 임금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학원생들이 당장의 밥그릇만 걱정하는 게 아니다. 이들은 고등학생, 학부생 시절부터 ‘과학’의 길을 걸어온 과학계의 미래 주역으로서 우리나라의 앞날을 우려한다. A 씨는 “카르텔을 빌미로 예산을 줄인다면 연구 환경이 나빠지는 게 제일 걱정된다”면서 “예를 들어 비싼 분석일 경우 최소한의 샘플만 하게 될 거고, 시약도 적은 양으로 사야 된다. 좋은 연구를 해내려면, 수많은 도전이 필요한데 비용을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시도만 하게 되면 연구 결과가 잘 나올 수 있을까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위 20% 연구 사업 구조조정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다. A 씨는 “사업에 따라서는 가령 1년 차에 도달하고자 했던 목표가 쉽지 않은 목표일 수 있는데, 이를 수행하지 못 해 강제로 구조조정 된다면 1년 동안 한 연구 성과들이 날아가고, 팀을 중간에 분해하게 된다”면서 “그런 식으로 연구 사업을 평가한다면 연구자들의 1년은 물거품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라를 대표하는 연구자가 되겠다는 다짐에는 그림자가 드리운다. B 씨는 “사실 박사는 많이 배출되는 반면, 학생 수는 점점 줄어들어 교수 자리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출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예산 삭감에서 정출연의 타격이 제일 크다 보니 트렌드에 변화가 생길 것 같다. 향후 진로를 정출연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대로라면 앞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