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주요 사업비 30% 가까이 감소…불통·일방적 통보에 과학기술계 반발
하위 20% 사업 구조조정 연구 생태계 파괴 초래…기술 패권 경쟁력 악화 우려도
33년 만에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젊은 과학자들이 신분 불안을 호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R&D 카르텔’을 언급한지 두달만에 정부 출연연구기관에 있는 포닥들은 취업에 나서거나, 다른 (포닥)자리로 옮겨야 할 상황에 그야말로 야비규환이다.
연구비를 나눠 먹고 갈라 먹는 ‘약탈적 이권 카르텔’로 지목된 과학계는 R&D 예산 삭감을 놓고 ‘혁신과 후퇴’라는 논란에도 휩싸였다. 정부가 ‘비효율·비윤리·무능’으로 단행한 이번 예산 감축은 1957년 과학기술에 투자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성장통’이란 경험을 안겼다.
내년도 R&D 예산은 올해보다 16.6% 삭감된 25조 9000억 원으로 책정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 금융위기에도 축소된 적이 없는 R&D 예산이다. 그동안 과도하게 늘어난 R&D 예산을 정상화·효율화 통해 공정의 궤도에 올리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R&D는 긴 호흡으로 가야 하는데 일본 수출규제나 코로나 사태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응하면서 자금을 한시적으로 투입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현안이 해소되거나 상황이 잠잠해지면 스스로 비효율적인 부분을 구조조정을 하거나 효율화를 해야 했지만 부처별 지출 한도나 연구기관별 지출 한도가 한번 올라가면 되돌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을 싸늘하다. 누리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코로나 백신 개발 성과물을 도출해낸 연구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은 커녕 이권 카르텔의 온상으로 매도하자, 분위기가 심각해진 것이다. 회의감에 빠진 일부 젊은 연구자들은 현장을 떠날 채비에 나서고 있다. 급작스럽게 인건비가 포함된 직접비가 30% 가까이 축소되자, 일부 연구기관은 전기료 납부까지 걱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예산 구조조정 과정에서 연구 현장과 소통 없이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점이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정부출연연 연구자는 “애초에 연초부터 경제 상황이 어려우니 허리띠 졸라매자면서 설득을 했다면 납득이 됐겠지만, 삭감 과정에서 아무런 논리나 이유, 설명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면서 “사실상 국가전략기술 분야를 제외한 분야는 당장 내년에도 해당 연구를 이어갈 수 있을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성과가 부진한 하위 20% 사업에 대해서는 구조조정하겠다는 정책을 놓고는 ‘탁상공론적’ 발상이라는 비판이다. 연구원들이 단기 성과에만 집착해 국가 연구 생태계 붕괴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전 세계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과학기술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국이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과학계만 주목받고 있지만, 다른 R&D 사업·지자체 출연연까지 파급력을 미치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