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날 개봉한 ‘아이유 콘서트 : 더 골든 아워’는 오전 9시 기준 실시간 예매율 21.9%를 기록했는데요. 2위인 ‘잠’(15.1%)과 3위인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12.0%)을 가뿐히 제친 수치입니다.
‘아이유 콘서트 : 더 골든 아워’는 아이유의 데뷔 15주년을 기념해 극장에서 개봉하는 첫 공연 실황 영화입니다. 지난해 9월 17·18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더 골든 아워 : 오렌지 태양 아래’(The Golden Hour : 오렌지 태양 아래) 콘서트 현장을 담았는데요. 해당 공연은 이틀간 약 9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빚기도 했죠.
스크린을 통해 공연을 관람한다는 게 조금 생소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콘서트 실황 영화는 극장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3월엔 임영웅의 전국 투어 앵콜 공연 ‘아임 히어로’(IM HERO)를 담은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이 개봉했습니다. 영화엔 ‘아임 히어로 앵콜 서울 공연’과 전국 투어 비하인드 스토리, 인터뷰 등 다양한 임영웅의 모습이 담겨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이는 25만여 명의 관객을 기록했습니다.
2월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방탄소년단:옛 투 컴 인 시네마’가 개봉했습니다. BTS의 월드 투어 콘서트 ‘BTS 옛 투 컴 인 부산’의 무대와 현장이 그려졌는데요. 영화는 9만2000여 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앞서 BTS는 공연 실황 영화 ‘번 더 스테이지:더 무비’(2018)로 개봉 첫날 7만7000여 명을,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2019)로 첫날 9만9000여 명을 동원한 바 있기도 하죠.
극장가는 지난 3년간 직격타를 맞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화관 관객이 급감하면서 대규모 영업 손실을 기록한 건데요. 대표적인 멀티플렉스 CJ CGV는 2019년 매출 1조9424억 원에 영입이익 1220억 원을 기록하며 연간 영업이익 1000억 원대를 돌파했지만,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각각 3887억 원, 2414억 원, 768억 원의 영업손실을 떠안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완화되며 베트남·인도네시아 사업이 흑자 전환한 데 힘입어 지난해 적자 폭은 전년보다 줄었고, 올해 적자 폭 역시 축소되겠지만, 곧바로 흑자 전환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극장 입장에서는 적자가 쌓이는 상황에서 고육지책을 내놔야 했습니다. 코로나19 유행과 함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이 많은 이용자를 모으는 등 다양한 환경 변화가 찾아오면서, 영화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심해야 했죠. 영화관은 이제 단순히 영화를 감상하는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공연 실황 영화도 이 같은 맥락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허민회 CGV 대표는 지난달 열린 ‘2023 CGV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에서 “콘서트, 뮤지컬, 오페라, 스포츠, 게임 중계 등 영화 이외에 다양한 얼터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아이스콘(ICECON)과 같은 CGV만의 콘텐츠를 더욱 풍성하고 다양하게 선보이겠다”며 “영화관의 편안한 좌석과 큰 스크린, 풍부한 사운드, 편리한 예매 시스템 등의 장점을 활용해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에도 가수들의 다큐멘터리, 콘서트 영상, 뮤지컬 등이 상영되곤 했지만, 단순한 일회적 이벤트에 가까웠는데요. 앞으로는 상영관이나 상영 빈도수를 늘리면서 이를 일상화하겠다는 거죠.
아이스콘은 공연 실황, 스포츠, 게임 생중계 등 영화 외에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CGV의 자체 브랜드입니다. 실로 CGV는 올해 상반기 아이스콘을 통해 임영웅, 블랙핑크, BTS 등 가수들의 공연 실황을 단독 상영하면서 48만 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허 대표는 포럼에서 4DX, ScreenX 등 기술특별관을 확대하고 골드클래스, 프라이빗 박스 등 프리미엄관을 지속적으로 늘려 나가겠다고도 밝혔는데요. 과거 영화관 매출을 흥행작에 의존했다면, 이젠 영화관에 다양한 가치와 경험을 부여해 복합 체험형 공간으로 진화시키고, 소비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의지가 체감되는 대목입니다.
이 같은 변화는 해외에서도 감지됩니다. 미국 최대 영화관 체인인 AMC에 따르면 다음 달 13일 북미 개봉을 앞둔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콘서트 실황 영화 ‘테일러 스위프트 : 에라스 투어’는 예매 첫날에만 약 2600만 달러, 우리 돈으론 약 345억 원을 벌어들였습니다. 이는 미국 내 역대 최대 일일 티켓 판매 기록을 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1690만 달러)’을 훌쩍 넘어선 기록인데요. 외신들은 개봉 첫 주말에만 티켓 수입이 1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팬들 입장에서도 공연 실황 영화는 환영할 만합니다. 콘서트 티켓 가격은 매번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대형 소속사를 중심으로 소속 가수의 콘서트 티켓 가격을 높이면, 다른 소속사들도 티켓값을 줄줄이 인상하는 풍경이 연출되죠. 여기에 좌석도 한정적인 탓에 예매도 어렵습니다. 반면 영화 티켓은 훨씬 저렴하고, 원하는 상영 일자와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어 나쁘지 않은 대체제가 될 수 있습니다.
공연 실황 영화는 해외 상영도 이뤄질 만큼 큰 호응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화된 특별관과도 맞물려 극장가의 새로운 콘텐츠로 자리 잡았는데요. ‘아이유 콘서트 : 더 골든 아워’는 국내 공연 실황 영화 중 최초로 아이맥스(IMAX)에서도 상영됩니다. 초대형 스크린을 갖춘 아이맥스는 국내 텐트폴 영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주로 상영되는 포맷이라 개봉 전부터 관심을 끌고 있죠. ‘아이유 : 더 골든 아워’는 한국 CGV 단독 개봉을 시작으로 미국과 일본, 독일, 영국, 호주, 멕시코 등 전 세계 38개국에서 상영될 예정입니다.
임영웅의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은 스크린X(ScreenX)관으로 개봉했습니다. 스크린X는 상영관의 정면 메인 스크린을 넘어 좌우 벽면까지 3면 스크린을 활용하는 기술로, 역동성을 강조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줍니다. 공연 실황 영상과 결합하면 현장성을 배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은 관객 25만 명 중 약 18만 명이 스크린X관을 통해 관람했습니다. 매출 점유율은 73%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죠.
극장들은 공연 실황 영화를 개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규모 라이브 콘서트, 청음회를 여는 등 다양한 시도에 나서고 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십센치(10CM)는 6월 29일부터 이달 9일까지 30여 개의 도시를 방문해 국내 최초로 CGV 극장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열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총 43회 이뤄진 이번 콘서트는 전석 매진을 기록하면서 인기를 끌었죠. 롯데시네마는 인디 가수들의 청음회를 열고 있습니다. 극장의 넓은 공간, 대형 스크린, 압도적인 음향 시스템을 활용해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본격적인 수익 다변화에 나서는 겁니다.
엔데믹으로 거리엔 활기가 돌지만, 극장가가 완연한 회복을 맞이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통상 7~8월 여름은 극장가의 대표적인 성수기로 뽑히는데요. 이 시기 개봉한 ‘밀수’, ‘더 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은 개봉 전 영화계가 뽑은 대작 영화로 거론됐지만, 성적으론 아쉬움을 남겼는데요. 이들 4개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은 ‘밀수’가 유일합니다.
한국 영화계의 부진과 함께 ‘영화관 위기론’이 줄곧 언급되고 있고, 각종 OTT가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극장가는 계속해서 자체적인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에 공연, 게임, 스포츠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요소와 결합한 얼터콘텐츠도 꾸준히 발전할 것으로 전망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