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만기 최대 40년으로 제한
상환능력 입증하면 50년 가능
특혜보금자리론 공급요건 강화
서민·실수요층 '우대형'은 지속
"대출 막차 타자" 역효과 우려
집값 상승 기대 꺾여야 진정
정부가 가계부채를 강도 높게 관리하는 것은 당장 급증한 가계부채를 잡기 위한 것도 있지만, 느슨한 은행 대출 행태를 옥죄기 위한 것도 있다. 하지만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옥죈 정책으로 인해 막차를 타려는 차주들이 몰리는 효과가 나 단기적으로 가계대출 상승의 불씨를 지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담대 DSR 산정 40년으로 = 금융당국은 50년 만기 주담대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우회 수단으로 활용되는 점을 지적하고 충분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에 13일부터 대출 전 기간에 걸쳐 상환 능력이 입증되지 않으면 50년 만기 주담대의 DSR 산정 만기를 최대 40년으로 제한했다. 다만 차주별 대출 전 기간 상환능력이 명백히 인정되는 경우에는 50년 만기 주담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금융권 자체적으로 40~50년 장기대출 취급 시 소비자 보호, 투기수요 방지 등을 위한 자체적 관리 노력도 강화하도록 했다.
이 같은 조치에도 가계부채 감소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변동금리 대출에 ‘스트레스 DSR 제도’를 도입하는 등 DSR 산정·적용방식에 대한 개선방안을 검토한다. 스트레스 DSR 제도를 도입하면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를 적용해 대출 한도가 줄어들게 된다. 예를 들어 소득 5000만 원의 차주가 금리 연 4.5%로 DSR 40%에 50년 만기로 대출 시 가산금리 1%포인트(p)가 적용되면 대출한도가 기존 4억 원에서 3억4000만 원으로 축소된다.
특례보금자리론에 대해서도 한정된 지원 여력을 서민·실수요층 등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1년간 한시적으로 공급하기로 했던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 상품의 지원대상자(부부합산 연소득 1억 원 초과 차주 또는 6억~9억 원 이하 주택대상)와 이미 주택을 보유하고 있던 일시적 2주택자는 26일까지만 신청을 받고, 27일부터 접수를 중단한다.
서민·실수요층에 해당하는 우대형 특례보금자리론(부부합산 연소득 1억 원 이하 및 주택가격 6억 원 이하)은 공급 목표 달성과 무관하게 어려운 이들의 주거 마련을 위해 계속 지원하기로 했다.
김태훈 금융위원회 거시금융팀장은 이날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발표하면서 “50년 만기 주담대를 잡는다고 해서 가계부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대출 과정에서 드러난 은행권의 미숙한 행태나 제도의 미비한 부분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면서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제도적인 개선을 다양하게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고정금리 유도 타이밍 부적절”= 전문가들은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대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오늘 발표한 가계부채 대책이 필요한 대책이긴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현재 가계대출 증가는 집값이 바닥을 치면서 유턴을 한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집값에 대한 스탠스가 오히려 향후 가계대출 증감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결국 이달 말 국토교통부가 발표하겠다고 한 주택 공급 대책이 관건이 될 것”이라며 “가계대출이 꺾이려면 주택가격이 빠르게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꺾여야 하는데 주택 공급 대책을 통해 수요가 몰리고 있는 수도권이나 서울 핵심 지역에 신규 공급이 있을 것이라는 신호를 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DSR 규제 예외 대상이 그대로 유지된 점도 이번 가계부채 대책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분양주택에 대한 중도금대출 △분양오피스에 대한 중도금대출 △서민금융상품 △300만 원 이하의 소액 신용대출 △전세자금대출 △주택연금(역모기지론) △보험계약대출 △예·적금 담보대출 등이 DSR 규제 예외 대상으로 적용되고 있다.
석병훈 교수는 “그동안 가계부채 증가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해 온 것이 DSR 예외 적용이 너무 많다는 것인데 이 부분이 그대로 유지됐다”며 “변동형 스트레스 DSR 도입도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결국 가계대출을 받을 때 고정금리로 받기를 유도하는 정책인데 지금 고정금리 대출을 받으라고 하면 나중에 대출금리가 인하되기 시작하면 낮은 변동금리 대출로 갈아탈 경우 중도상환수수료를 부담해야 하거나 높은 고정금리로 그대로 이자를 부담해야 해 도입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정책 효과 의문” = 전문가들은 50년 만기 주담대에 대한 DSR 산정 만기 조정 등 조치에 대해 이번 대책으로 인해 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신용상 센터장은 “50년 만기 주담대는 DSR 산정 만기를 40년으로 조정한다고 주담대 증가세가 잡힐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50년 만기 주담대가 규제 강화로 인해 없어진다면 풍선효과가 발생해 다른 대출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석병훈 교수도 “정작 고금리 시기에 차주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낮출 수 있다며 50년 만기 대출을 도입하도록 한 것이 금융당국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50년 만기 정책모기지 상품이 먼저 나오고 시중은행이 출시한 것인데 이번에 선택지가 없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50년 만기 주담대의 규제 강화로 가계부채 증가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겠지만, 금융소비자에게 선택지를 사라지게 하면서 혼란만 가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