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무반응…'文 역할론' 출구전략 부각
박지원 "文 수일 내 상경해 단식 만류해야"
文, 평양선언 기념식 참석차 19일 서울行
단식 보름째를 맞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체력적 한계를 뚜렷하게 보이면서 당 안팎에선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여당의 미온적 반응 탓에 단식 중단 계기가 마땅치 않은 가운데 문 전 대통령의 직접적인 만류가 일종의 출구전략이자 지지층 결집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전직 대통령의 적극적인 정치 행보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는 만큼 우려섞인 시선도 있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공식 일정 없이 비공식 접견만 소화하며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건강은 악화일로다. 특히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관련 두 차례(9일·12일) 검찰 조사 이후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했다는 것이 민주당의 설명이다. 전날(13일) 이 대표는 단식장소를 국회 본청 앞 천막에서 본청 내 당대표회의실로 옮겼다. 이 대표가 부정맥 빈도 상승·저체온증 등 증상을 겪고 있다는 의료진 소견도 나왔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의 현 상태에 대해 "지금 앉아 계시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누워서 접견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내부에선 단식 중단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전날만 해도 지도부를 비롯해 당내 최대 의원모임 '더좋은 미래', 초선모임 '더민초', 김근태계 모임 '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민평련) 소속 의원 등이 이 대표를 찾아 단식 중단을 요청했다.
같은 날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이 대표를 만나 단식을 중단하라는 문 전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단식 지속 의지를 보이자 문 전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노 실장을 보내 그런 표현(단식 중단)을 하셨는데 수일 내로 문 대통령이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상경해 단식을 만류하는 모습을 갖춰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이 단식장에 가면 엄청난 이변이자 굉장한 효과가 있을 것 같다"며 "이 대표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데 문 대통령을 좋아해 당을 지지하는 분도 있기 때문에 지지층 결집 효과가 클 것이다. 이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단식 중단 계기를 만들어주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총선 등 여러가지 상황이 있는 것은 변수"라며 "(전직 대통령이) 정치 전면에 개입한다는 부담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부터 윤석열 정부의 국정기조 전면 전환·내각 쇄신 등을 요구하며 단식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부여당의 반응은 미적지근한 상황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이날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원론적으로 이 대표의 단식 중단을 요청하기는 했지만 이 대표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 전 대통령의 상경이 이 대표의 새로운 출구전략으로 부각되는 배경이다.
일각에선 문 전 대통령이 19일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 참석차 서울로 오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이 대표의 단식장을 방문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19일은 이 대표의 단식 20일째인 만큼 당장 몸이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인 데다 방문 자체 의미도 희석된다는 지적이 있다. 당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이 어딘가 가는 길에 단식장에 들르는 것이 되면 모양이 빠지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문 전 대통령이 상경한다면 이번 주말이나 내주 초, 16~18일 정도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문 전 대통령이 직접 단식장에 온다면 주말이나 다음주 초가 될 것"이라며 "오더라도 (발언 수위는) 이 대표와 민주당을 측면 지원하는 수준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의 방문을 반기지 않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 대표는 자신의 체제가 공고해야 하는데 문 전 대통령이 단식을 그만두라고 해서 그만두면 모양새가 안 좋다"며 "비명계가 활성화됐다면 문 전 대통령이 와서 당이 단합하는 게 의미가 있는데 지금 민주당은 이 대표가 거의 장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 전 대통령은 방문을 통해 영향력이 건재하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할 수 있다"며 "이 대표는 그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