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턴 간단히 하시죠”…달라진 차례상 풍속도 [이슈크래커]

입력 2023-09-2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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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2022년 9월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국민 차례 간소화 기자회견’을 갖고 간소화 된 차례상 예시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추석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달 28일부터 시작되는 올해 추석 연휴는 주말과 대체 공휴일, 개천절까지 포함해 6일간 이어집니다.

늘 그렇듯 다가오는 연휴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하는데요. 시간이 흐른 데 따른 변화도 체감됩니다. 바로 차례상이죠.

차례상이라면 과일부터 나물, 생선, 송편 등이 가득 올라간 모습을 흔히 상상하곤 합니다. 차례 음식을 준비하려는 인파가 모이면서 명절을 앞둔 전통 시장, 대형마트는 북새통을 이루곤 하죠. 그러나 이 차례상이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젊은 세대, 젊은 부부를 중심으로 차례를 꺼리는 분위기가 커지면서 명절 전후로 고부 갈등, 부부 싸움 등 가족 간 충돌이 발생하기 쉽죠.

이에 차례상은 점차 간소화되는 추세입니다. 상에 올라가는 음식의 가짓수가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아예 차례를 하지 않거나 가족 모임으로 대체하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요. 특히 최근엔 고물가로 인한 부담이 차례상의 변화 양상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17일 오전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추석 과일 선물세트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10명 중 8명 “추석 물가 올랐다”…제수 생산량 급감 영향

추석 물가 상승을 체감한 이들을 소수로 치부할 순 없어 보입니다. 국민 10명 중 8명이 추석 물가 상승을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여론조사 기업 피앰아이가 전국 만 20~69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87.2%가 ‘이번 추석 물가가 이전에 비해 올랐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연령대별로는 △20대 80.9% △30대 82.2% △40대 85.7% △50대 95.1% △60대 91.9%가 이같이 답했습니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물가 상승 체감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됐죠.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9% 올라 지난해 4월(1.6%) 이후 1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특히 과일값이 상상 이상인데요. 25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 가격동향에 따르면 사과(홍로) 10개 평균 소매 가격(23일 기준)은 3만1580원으로, 전년 동기(2만5506원) 대비 23.8% 올랐습니다. 배(신고) 10개 가격도 3만4854원으로 전월(3만2337원) 대비 7.8% 비싸졌죠.

과일값이 크게 뛴 건 봄의 냉해, 여름의 장마·폭염 등으로 생산량이 급감했기 때문입니다.

과일뿐만 아니라 생선값도 올랐는데요. aT 가격 동향에서 참조기(3마리)는 어획량 감소로 전통시장·대형마트에서 모두 전년 대비 30% 이상 올랐습니다. 쌀(2㎏)은 정부의 적극적인 수급 조절에도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각각 7.4%와 25.7% 상승했죠.

주요 대형마트들은 가격이 안정세인 샤인머스캣 등을 넣은 혼합 과일 세트를 확대 판매하면서 체감물가 완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샤인머스캣은 국내 생산 농가가 늘면서 평균 도매가격(23일 기준·L과·2㎏) 2만8060원으로 1년 전(3만1872원)과 평년(3만4370원) 대비 하향세입니다.

▲집반찬연구소 수도권 차례상 연출 사진. (사진제공=롯데백화점)
명절 음식보단 휴식과 가족에 집중…사다 먹거나 밀키트 활용

꼭 물가 때문이 아니더라도, 명절 음식을 거하게 준비하지 않겠다는 이들도 많습니다.

피앰아이의 같은 여론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41.2%는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음식 준비 계획에 대해 ‘직접 만들 예정’이라고 답했습니다. △‘전, 잡채 등 손이 많이 가는 음식만 사다 먹을 예정’(24.1%) △‘밀키트 활용 예정’(19.3%)이 그 뒤를 이었는데요.

20대는 4명 중 1명꼴(26.5%)로 밀키트를 사용해 추석 음식을 준비하겠다고 답했죠. ‘적절히 배달시켜 먹을 예정’이라는 답도 응답자의 15.5%에 달했습니다. 음식 준비로 보내는 시간을 줄여서 휴식을 취하거나, 가족과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 같은 수요에 맞춰 유통업계도 간편하고 저렴한 먹거리 행사에 나섰습니다. 롯데마트는 자체 브랜드(PB) 제수용 간편식 등 30여 품목을 할인 판매하고, 이마트는 송편, 모둠전, 떡갈비 등 피코크 간편 제수 음식과 즉석조리 먹거리 행사를 진행합니다.

백화점도 추석 차례상 세트를 내놓았는데요. 롯데백화점은 경상도 차례상, 전라도 차례상 등 지역 특색을 고려한 간편 차례상 세트를 선보이고, 현대백화점은 한정식 식당 예향의 레시피를 담은 상차림 세트 등을 판매합니다.

단순히 가격만 비교했을 땐 간편식 상품이 더 비쌀 수 있지만, 재료 손질부터 조리, 뒷정리까지 하는 수고까지 고려하면 이 같은 상품이 더 경제적이라는 의견도 나오는데요. 이에 유통업계도 매년 명절 간편식 제품군 구성과 물량을 확대하는 추세입니다.

▲22일 오전 서울 은평구 은평한옥마을 예서헌에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주최로 열린 추석 차례상 시연 행사에서 전통차례상(사진 위)과 간소화 차례상 차림이 시연되어 있다. (뉴시스)
‘휑’한 전통 차례상?…조선 유학자들 ‘사치’ 아닌 ‘검소’ 강조

사실 우리의 전통 차례상은 소박하게 차리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올 초 성균관은 설 연휴에 앞서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는데요. 흔히들 알고 있는 ‘예법’보다 ‘편의성’을 강조하는 모습으로 ‘파격적’이라는 반응을 자아냈습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등이 1월 16일 발표한 ‘명절 인사법 및 차례 방안’에 따르면 예시로 제시한 차례상에는 떡국부터 나물·구이·김치·술(잔)·과일 4종 등 총 9가지 음식이 올라갔습니다.

흔히 ‘차례상’ 하면 떠올리는 각종 전, 형형색색의 과일은 권고되지 않아 눈길을 끌었는데요. 성균관은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며 “전을 부치느라 고생하는 일은 인제 그만두셔도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과일에 대해서도 “4~6가지를 편하게 놓으면 된다”며 ‘편의성’을 강조했죠.

성균관은 지난해 추석 때도 전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제외한 차례상 표준안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당시 성균관은 “차례는 조상을 사모하는 후손들의 정성이 담긴 음식”이라며 “이로 인해 고통받거나 가족 사이의 불화가 일어난다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성균관은 올해 기자회견에서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에 대해 “예법을 다룬 문헌에 없는 표현”이라고 했는데요. 홍동백서는 붉은 과일을 동쪽, 흰 과일을 서쪽에 배치하는 차례상 순서를 말합니다. 조율이시는 대추, 밤, 배, 감 따위를 뜻하는 표현인데요. 일부 가정에서는 이런 순서와 방식에 맞춰 차례상을 준비해 왔지만, 실제로는 특정 과일을 준비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게 성균관의 설명이죠.

화려한 차례상은 실리와 검소함을 미덕으로 여긴 유교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실제 조선 시대 선비들도 ‘제사는 검소하게 지내라’는 취지로 권고해왔다는데요. 일례로 조선 후기 문신 겸 유학자인 갈암 이현일(1627~1704)이 남긴 ‘갈암집’에는 “상례와 제례는 형식을 갖추어 잘 치르는 게 아니라 슬퍼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더 낫고, 사치스럽게 하기보다는 검소하게 하는 게 더 낫다”는 문구가 담겼습니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장은 “설 차례상은 간소화를 기준으로 가족들과 상의해서 해도 무방하다”며 “차례상은 누가 뭐라고 해도 조상을 모시는 정성이 제일이다. 정성은 없는데 제수만 많이 차린다고 해서 좋은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차례는 말 그대로 차(茶)를 올리면서 드리는 간단한 예(禮)를 뜻합니다. 이를 기제사와 혼동해 상차림을 거나하게 준비하는 관습과 더불어 과시욕이 명절의 참된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출처도, 방식도 명확하지 않은 예법이 아닌 조상과 가족을 향한 마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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