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2006년 이후 18년째 3058명으로 묶인 의과대학 정원을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르면 이번 주중 의대 정원 확대 규모와 방식 등을 직접 발표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국가적으로 그만큼 중차대한 과제라는 뜻이다.
초등학생 의대 준비반이 사교육 시장을 달굴 정도로 ‘의대 열풍’이 거센데도 정작 병원 현장에선 의사가 태부족이다. ‘응급실 뺑뺑이’ 현상 등도 만연하고 있다. 필수의료 분야를 비롯한 의료계 전반 인력난이 심해져 의대 증원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의 반발로 2020년 잠정 중단됐던 증원 논의는 올해 의료현안 협의체, 보건의료정책 심의위원회 운영을 계기로 재개됐다. ‘2025학년도 입시부터 확대한다’는 방향에 대한 합의도 이뤄졌다고 한다.
남은 쟁점은 증원 규모다. 정부는 1000명 안팎 늘리는 방안을 선호하는 반면 의협 등은 대폭적 확대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집단 반발과 충돌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가야 할 방향은 자명하다. 이번 기회에 적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의 의료 인력 확보를 위한 증원을 해야 한다.
의협은 의료수가 개선 등 의사가 필요한 곳에 배치되도록 하는 정책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엇이 먼저인지 순서를 놓고 다툴 단계는 한참 지났다. 객관적인 의료 통계가 증원의 시급성을 말해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상 의사 수는 지난해 기준 인구 1000명당 2.5명이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2.1명으로 준다. OECD 평균 3.7명에 한참 못 미친다. 의대 졸업자 수도 마찬가지다. 2021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7.3명으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의사 절대 수가 부족하니 곳곳이 의료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특히 지방 의료 체계는 붕괴 직전이다. 강원 영동 지역에선 심장내과 전문의를 찾기 어려워 야간·공휴일엔 대관령을 넘어야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한다. 영동 지역만의 얘기가 아니다.
인구 6700만 명대인 영국은 2020년 의대 42곳에서 모두 8639명의 신입생을 뽑았다. 국내 의대 정원의 3배에 가깝다. 의사 수가 1000명당 4.5명인 독일은 의대 정원을 매년 5000명씩 증원하기로 했다. 의료 인력 사정이 한결 나은 선진국도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계속 의료 인력을 늘려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는 발상부터 다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50년 기준 2만2000명 이상의 의사가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25년 5516명, 2030년 1만4334명, 2035년 2만7232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통상 의사 한 명을 키우는 데 약 10년이 필요하다. 한국 의료 시스템은 이미 무너졌다는 끔찍한 경고가 아닌지 살필 일이다.
의협은 우리 보건·의료 여건을 직시해야 한다. ‘밥그릇 싸움’은 금물이다. 정부 책임도 막중하다. 의료계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상생의 길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