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공정거래 수사, 벤치마킹한 美보다 강력 [‘카르텔 척결’ 칼 쥔 檢]②

입력 2023-10-24 06:00수정 2023-10-24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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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처벌 날 세운 검찰…“경쟁법, 형사법화 우려”

검찰-공정위 ‘리니언시’ 별개…“양쪽 다 신고해야” 면책

대검 예규만으로 ‘형벌감면’제 만들어 독자수사
‘공정위 자진신고’ 순위 관계없이 검찰 기소↑
처벌성향 강성+검찰권 확대…형사법상 ‘불균형’

우리나라 공정거래 수사 체계는 미국 연방 법무부(DOJ) 반독점국을 벤치마킹했지만, 미국보다 더 강력한 수사 모델을 구축해가고 있다. 형벌 조항상 처벌 성향이 강하면 검찰권을 자제하고 반대의 경우 검찰권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형사사법 체계상 균형을 맞추는 국제적인 추세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대검찰청이 지난해 12월 14일부터 이틀간 미국 연방 법무부 반독점국과 공동으로 개최한 ‘한‧미 공정거래 형사집행 워크숍’에 참석한 한‧미 법집행기관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여덟 번째 이원석 검찰총장. (사진 제공 = 대검찰청)

23일 본지가 법무법인(유) 광장 공정거래그룹에 의뢰한 ‘경쟁법 위반에 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의 형벌제도’ 전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형사처벌은 DOJ가 주도한다.

DOJ는 1890년 미국 최초의 독점금지법 ‘셔먼법’ 제정 이래 반독점 분야 형사집행에 관해 장기간 판례 및 수사·재판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한국 검찰은 2020년 DOJ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이후 양국간 구체적 공조 방안을 논의하면서 경쟁법 위반 수사에 있어 미국 모델을 참고하고 있다.

DOJ 반독점국 매뉴얼은 ‘하드코어 카르텔(경성 담합)’ 사건을 ‘당연 위법(illegal per se)’으로 봐 △가격합의 △입찰담합 △시장분할 △물량합의 등을 형사사건에 분류한다.

또한 형사벌이 아닌 ‘합리성 원칙(Rule of reason)’에 따른 심사가 필요한 사건은 민사사건으로 따로 뗀다. 법적 결론이 분명하지 않은 사건, 법률이나 사실관계가 새로운 사건, 이전 검찰의 기소에 일관성이 없었던 경우, 피조사인이 행위 결과를 인식하지 못했던 경우는 아예 형사사건으로 처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공정거래 수사‧공판’ 선진 형사집행 실무 습득

반면 우리 검찰은 대검찰청 예규 ‘카르텔 사건 형벌감면 및 수사절차에 관한 지침’만으로 공정거래위원회와 별도로 자진신고(리니언시) 제도를 활용해 직접 수사에 착수한다. 검찰이 검찰 자진신고에서 1순위 지위자가 아닌 한 공정위의 자진신고 순위와 상관없이 기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현(사법연수원 39기‧공정거래법 전문) 광장 공정거래그룹 변호사는 “앞으로 공정위에 자진신고가 접수돼 공정위가 조사를 진행 중이거나 사건 처리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검찰이 형벌감면 제도를 통해 혐의사실을 인지하는 경우 공정위 처분을 기다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뒤 고발을 요청해 기소하는 케이스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출처 = 법무법인(유) 광장)

게다가 한국은 전속고발제가 있음에도 검찰이 독자적으로 담합행위를 수사한다. 대표적 사례가 ‘빌트인 가구 담합’ 사건이다. 검찰은 빌트인 가구 담합 사건에서 공정위의 처분 없이 형벌감면 지침에 따른 수사를 벌여 기소했다.

가 변호사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전속고발제가 존재하는 일본에서 한국 공정위에 해당하는 공정취인위원회(이하 공취위) 고발 가능한 사건은 사적 독점(국내로 따지면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행위)과 카르텔”이라면서 “공취위는 고발권 행사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지 않도록 카르텔 위주로 고발하고 고발 기준을 정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부과되는 제재는 행정적 제재(과징금, 시정조치)에 그친다. 이는 카르텔을 겨냥한 법적 규제가 시작되기 오래 전부터 유럽 역사에서 이어져 내려온 협력과 연대를 중시하는 관행과 연결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EU도 카르텔에 대해서는 범죄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 한국 : 2020년 공정거래법 개정 과정에서 기업결합에 관한 형벌조항 폐지. 1980년 제정 당시부터 기존 40년 동안은 처벌해 왔음. (그래픽 = 손미경 기자 sssmk@)

“법원의 형 집행 어렵게 할 수도”

이혁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해외 주요국 경쟁법 체계와 비교할 때 형사처벌 대상과 범위가 넓은 것이 사실”이라며 “경쟁법상 규제는 경제주체의 다양한 거래 중 부당성이 입증된 행위에 한하는데, 지나친 형사처벌 확대는 자칫 경쟁법의 형사법화를 초래해 법원이 형사벌에 준한 엄격한 증명을 요하는 등 오히려 집행을 어렵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특히 “경쟁 촉진으로 국민경제 발전을 지향하는 경쟁법 취지와 형사처벌 성향이 강하면 검찰권은 자제되거나, 반대로 형사처벌 성향이 약하면 검찰권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형사사법 체계상 균형을 맞추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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