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은 藥만 잘 버려도 강과 산이 깨끗해진다

입력 2023-10-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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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어제 폐의약품 회수·처리체계 개선방안을 제9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 보고했다. 주요 골자는 남은 약을 약국·보건소에 가져가는 현행 방식에 더해 아파트 등에 수거함을 마련해 처리 편의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폐의약품 수거를 지방자치단체에만 맡기는 대신 우체국이나 민간 물류업체가 가져갈 수 있도록 법적 근거도 만든다. 박수를 받고도 남을 참신한 발상이다.

폐의약품은 유효기간이 지나거나 변질·부패 등으로 인해 사용할 수 없는 물질이다. 환경오염 주범의 하나다. 2017년 생활계유해폐기물로 지정된 후 별도의 전용 수거함을 통해 수거한 후 소각 처리하게 돼 있다. 그러나 폐의약품을 따로 버려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원순환사회연대가 최근 시민 823명에게 물었더니 약 40%의 응답자가 분리배출 방법을 모른다고 답했다고 한다.

시민들이 남은 약을 버리는 방법으론 종량제 봉투 배출이 42%로 가장 많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폐의약품이 종량제봉투에 담겨 생활폐기물과 같이 매립되면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켜 생태계가 교란되게 마련이다. 피임약 성분인 합성 에스트로겐의 축적으로 일부 어종의 멸종 등 생태계가 파괴된 외국 보고 사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서남아에선 독수리 3종의 멸종 위기 사례가 보고됐다. 항생제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가 인류를 위협할 것이란 우려도 폭넓게 대두된다.

대다수 선진국이 약물과 관련한 환경·보건 피해 가능성에 체계적인 수거 시스템으로 대응하고 있다. 프랑스는 2007년부터 약국의 폐의약품 회수를 의무화했다. 미국은 약국, 병원 등을 수거 지점으로 지정하고 우편을 통해서도 반환할 수 있도록 했다. 국가 의약품 수거 지정일도 운영한다.

국내 회수·처리 사업은 2008년 서울에서 시범 시행된 뒤 2010년 중앙부처 주관하에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아주 뒤늦은 편은 아니다. 문제는 법적 구속력도 없고 별다른 유인책도 없어 환경을 보살피는 본령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2020년 국민권익위원회가 폐의약품 수거에 관한 시군구별 조례 제정 등 제도개선을 권고했지만, 여전히 없는 지자체가 많다. 농어촌은 약국이나 보건소가 멀고 지역별로 수거 방식이 달라 혼란과 혼선이 여전하다. 갈 길이 먼 셈이다.

한국 사회는 고령화 속도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폐의약품 문제 또한 갈수록 크게 불거질 수밖에 없다. 국내 의약품 소비 추세만 봐도 자명하다. 2021년 기준 우리 국민 1인당 의약품 판매액은 785.3달러(약 100만 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594.4달러를 한참 웃돈다. 남은 약 문제를 등한시할 경우 우리 강과 산, 바다가 오염 물질로 덮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내 4대강 유역에서 위궤양 치료에 쓰이는 시메티딘 성분이 외국의 5배 수준으로 검출되는 등 이미 의약품 오염이 심각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지구촌 환경과 건강을 지키는 일에 꼭 거창한 구호나 운동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번 체계 개선을 계기로 힘을 합쳐 실행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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