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건설과 협력업체 직원들이 KT 판교 신사옥 앞에서 KT를 향해 소리쳤다. 코로나 19와 원자잿값 폭등 탓에 천정부지로 치솟은 공사비 부담을 나누자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건설업계에서는 KT가 다른 대기업 등과 달리 고통 분담에 소극적인 게 갈등이 외부로 표출된 이유란 해석이 나온다.
1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쌍용건설과 협력업체 직원 30여 명은 전날 KT 판교 신사옥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2020년 입찰 이후 코로나19 사태, 전쟁 등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예상하기 힘든 일로 인해 공사비가 폭증한 만큼 발주처인 KT가 늘어난 공사비를 보전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KT는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을 배제한다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쌍용건설은 국토부의 계약금액 조정 등의 업무지침, 건설산업기본법 등에 따라 공사비 조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모든 건설공사의 계약 당사자는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1항·제5항에 따라 계약을 이행하게 돼 있으니 발주자는 해당 규정 이행에 적극적으로 협조해달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건설자재 수급 불안 대응 업무처리지침을 내린 바 있다.
건설산업기본법은 경제 상황 등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 변경을 타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않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것은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다.
쌍용건설은 KT 신사옥 신축공사를 967억 원에 수주했는데 공사비가 오르면서 171억 원을 더 썼다. 물가가 폭등하면서 예상보다 17.7%의 비용이 더 발생한 것이다. 쌍용건설이 이 사업을 수주할 당시인 2020년 월평균 118.87이던 건설공사비지수는 올해 8월 현재 151.26으로 27.2%나 높아졌다.
건설업의 경영상황 악화가 쌍용건설이 갈등을 밖으로 드러낸 이유로 꼽힌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공사비 상승세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이고 그런 만큼 건설사들의 경영난도 가속하고 있다"며 "KT를 비롯해 다른 대형 발주사의 공사를 수주하는 데 부담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면서 대립각을 세운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KT의 인색한 태도도 배경으로 거론된다. A 건설사 관계자는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대기업 등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곳들은 외부요인으로 인해 공사비가 늘면 대체로 시공사, 협력업체와의 고통 분담 차원에서 증액 요구에 응하는 편이지만 KT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중견 건설사도 쌍용건설과 마찬가지로 KT에 물가상승을 반영한 공사비 인상 요청을 했지만 별다른 호응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천재지변과 마찬가지로 계약 당시 예상하기 힘들었던 상황이 벌어지면서 공사비가 증가했는데 특약을 내세워 모른척하는 것은 사실상 비용을 시공사와 그 협력업체에 떠넘기는 것과 다름없다"며 "추가 비용은 계약 당시의 품질 수준을 맞추기 위해 들어간 것인 만큼 KT가 부담하는 게 이치에 맞다"고 강조했다.
쌍용건설이 공개적으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 이뤄질지 낙관하기 힘들다는 관측이 나온다.
B 건설사 관계자는 "KT가 민간기업이란 점과 계약서상의 특약을 앞세워 버틴다면 사실상 강제할 방법이 없어 공사비 인상은 어려울 수 있다"며 "평판 악화를 생각하면 건설사들은 늘어난 공사비를 다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에도 일단 공사는 끝까지 마무리해야만 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