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검정고무신 사태 방지법으로 불리는 문화산업공정유통법(문산법)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가운데 전문가들은 해당 법안이 부처 간 중복 규제 문제뿐만 아니라 K-콘텐츠의 경쟁력 하락과 산업 전체의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고 입을 모아 지적했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문산법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까지 반대하면서 부처 간 갈등도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문산법은 방통위 공정거래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을 문체부가 직접 하는 법안으로 중복 규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 문체부가 문화산업계의 공정위 역할을 하고자 하는 법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시정명령 불이행시 이행강제금 부여, 과태료,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문체부가 예술인의 권리보호를 넘어 시장규제에 대해 상당히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된다”면서 “이 경우 시장질서 규제에 대한 전문성이 보다 나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까지 하게 돼 중복 규제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개별 산업에 대한 규제 측면에서도 전기통신사업법, 방송법 등에 근거한 방통위의 역할과도 충돌을 초래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올해 3월 만화 검정고무신의 고(故) 이우영 작가가 출판사와 저작권 분쟁 도중 세상을 등진 사건을 계기로 문체부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법이다.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를 막고 공정한 유통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법의 취지지만 실제로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규제로 인해 오히려 국내 산업계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황유선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독점력이 커지고 국내 사업자들이 위축되며 시장이 침체된 상황”이라며 “해당 법안은 규제 민감도가 높은 국내 사업자를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기에 산업이 빨리 변화하는 시기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영근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도 “창작자에 대한 인지도를 무시한 일률적 보상 조건과 창작 과정에서의 플랫폼의 개입 금지 등을 담은 법안 내용은 창작자 보호라는 선의의 입법 취지에서 생각지 못하는 신인 창작자 진입 봉쇄로 인한 국내 문화산업 생태계의 고사와 해외 빅테크 플랫폼의 국내 시장 장악이라는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가 시장의 활력을 저해하는 사소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인 만큼 문산법의 방향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검정고무신 사태와 같은 사회적 이슈를 여론몰이를 위한 선동수단에 이용한 문체부의 성급한 입법 행보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승민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안 내용만 보면 문체부가 대놓고 규제 부서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며 “문화산업에 대해 포괄 규제를 도입하면 문체부가 부처 중 가장 ‘옥상옥’ 부서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문화산업에 대한 인허가권, 진흥, 예산을 다 쥐고 있는 문체부가 규제까지 하려면 중립성, 공정성 보장하는 독립규제위원회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박사는 “문산법은 검정고무신 사건을 계기로 이뤄진 법률안인데 특정한 현안이 국민들의 감정과 감성에 기반해서 나온 법률들의 경우 법안이 통과는 빨리 되는데 그만큼 후유증이 크다”면서 “감성적 맥락에서 제기된 법안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상임위 논의가 여전히 남은 상태니까 글로벌 문화시장과 산업에 미칠 영향과 공정거래에 대해 의미가 있는 법인지부터 연구 분석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임위 축조심사를 거쳐 찬반 토론을 통해 의결된 문산법은 법제심사소위원회와 국회 본회의를 거쳐 최종 의결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