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공개, 예방 효과 있는지 의문…주변인 피해는 뚜렷”
중대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신상 공개 대상과 범위를 넓히는 법률이 내년부터 시행되는 가운데, ‘추가 피해 예방’이라는 뚜렷한 이익이 전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언론중재위원회(위원장 이석형)가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와 언론의 범죄보도’ 토론회에서다.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안’ 내용에 대해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다.
일명 ‘머그샷(수사기관이 범인 식별을 위해 촬영한 사진)’ 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률안은 신상 공개 결정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수사 기관이 촬영한 사진을 공개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필요한 경우 강제 촬영도 가능하다.
그동안 특정강력범죄(살인·존속살해, 강간·강제추행, 미성년자추행 등), 성폭력 범죄로 한정했던 신상공개 대상 범죄는 내란·외환, 범죄단체조직,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마약 관련 범죄 등으로 범위가 확대 적용된다.
또 재판 단계에서 특정중대범죄로 공소사실이 변경된 경우에는 피고인도 법원 결정을 거쳐 검찰이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종전에는 재판에 넘겨지기 전 신분인 피의자에 대해서만 신상 공개 규정이 있었다.
최근 ‘부산 돌려차기남 사건’ ‘정유정 사건’ 등 흉악범죄가 이어지자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와 함께 피의자의 인격권과 주변인에 대한 2차 피해 등 우려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날 미국, 영국, 독일 등의 피의자 신상공개 현황과 입법례를 발표한 김광현 변호사(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는 “우리나라는 피의자 신상 공개에 가장 엄격한 국가 중 하나”라며 “이번 신상공개법 도입으로 이러한 태도가 조금 완화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재판이 확정되지 않아 무죄로 추정되는 범죄자가 누구인지 단순히 ‘안다’는 것보다 피해 예방이라는 뚜렷한 이익이 존재해야 하고, 연좌 효과로 피의자 가족 등에게 발생할 수 있는 피해 방지도 중요하다”며 “신상공개는 신중한 태도가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피의자 신상공개에 대한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토론이 이어졌다. 앞서 JTBC는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최원종), 신림동 성폭행 살인 사건(최윤종) 가해자의 실명을 경찰보다 앞서 공개했다. SBS도 2020년 텔레그램에서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 신상을 공개했다. 이들 언론사 모두 국민 알 권리와 추가 피해 예방을 이유로 들었다.
김송옥 중앙대 법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익명보도와 실명보도의 선택은 언론기관의 윤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며 “수사, 재판이라는 공적 절차에 들어간 피의자의 신원은 프라이버시의 보호영역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엉뚱한 사람이 피의자로 잘못 지목되는 현상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박경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피의자 신상공개가 범죄 예방 효과로 연결되는지 실제 검증된 자료가 없다”며 “특히 상대적으로 경범죄자의 신상 공개를 결정하는 데 알권리보다 범죄자 가족이 입을 피해, 범죄의 대물림 현상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수현 미디어오늘 기자는 “피의자 신상공개는 행위에 대한 효과가 분명해야 한다. 앞서 JTBC, SBS의 피의자 선공개는 범죄 예방 효과로 이어졌다는 근거가 아직 없고, 입증도 어렵다”며 “언론은 사실상 공권력의 (공개) 결정에 따라야 하는데 일관성을 확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