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인구 절벽의 시대를 맞아 우수한 인재 양성은 국가 경제의 미래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됐다. 우리나라가 좁은 국토, 빈약한 보유 자원 등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소중하게 여긴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2023년 우리나라가 처한 인재 환경은 희망적이지 못하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해 경제활동인구가 급속하게 감소해 신규 인력 양성이 어려워졌다. 또 국가 간 기술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우수한 해외 인재 확보도 쉽지 않게 됐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적 자원 경쟁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지난 9월 발표한 세계 인재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64개국 중 34위에 자리했다. 교육에 대한 투자는 많지만 교육에 대한 매력도는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또 프랑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가 조사한 국가별 인적 자원 경쟁력 지수에서는 24위를 차지했다. 경제 혁신성이나 고숙련 인재의 질은 높은 대신, 외국 기업과 인재를 유치하는 대외 개방성이나 여성 인력 고용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평가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된 문제점을 알 수 있다. 바로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다양성을 수용할 줄 아는 개방형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인재들이 기술 혁신에 필요한 글로벌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추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개방성과 다양성을 중심에 둔 인재 양성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및 스탠퍼드대학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바이오, 로봇, 스마트 제조 등 첨단 기술 분야에 한미 공동 연구·개발(R&D) 과제를 발굴하고, 인재 교류를 추진하기 위해서다.
MIT는 글로벌 고등교육 평가 기관인 QS가 발표하는 세계 대학 순위에서 2017년 이래 계속 1위를 유지할 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명문 대학이다. 산업 리아종 프로그램(ILP)이라는 별도의 회원제 산학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외부 기업이 MIT의 교수진 및 인력과 교류하고 연구실 장비를 사용할 수 있게 연결해 준다. 수천 개의 스타트업을 탄생시킨 스탠퍼드대학 역시 인근 실리콘밸리와 함께 미국의 산학협력 생태계를 이끈다.
이번 협약은 우리나라 우수 인재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진 대학과 함께 연구하면서 글로벌 혁신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은 그동안 수평적 관계의 국제 기술 협력에서는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으나, 한미 동맹 70년이라는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기술 협력 채널이 확대된 것이 고무적이다.
더불어 KIAT는 미국 국제교육원(IIE)과 손잡고 이공계 청년 인재 교류 사업도 시작한다. 첨단 산업을 전공하는 이공계 학생들을 미국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보내어 미국의 선진 연구 환경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2024년 300명을 시작으로 4년간 1900명의 학생을 파견할 예정이다.
특히 다양성을 중시하는 미국의 리더십을 확인한 것은 이번 방미의 큰 소득이다.
MIT 샐리 콘블러스 총장은 MIT 사상 두 번째 여성 총장이며, R&D컨퍼런스에서 발표한 공대 학장들 중 절반 이상은 여성이었다. 스탠퍼드대에서도 AI, 로봇 등 첨단 분야에서 여성 교수진들이 연구를 주도하는 모습이다. 인재를 채용할 때 글로벌 마인드와 다양성을 중시하는 태도는 우리나라에도 꼭 필요해 보인다.
뛰어난 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산업 기술 분야를 넘어 국가 경제 전체의 과제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첨단 산업 분야는 글로벌 단위의 경쟁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만큼, 단순한 인재 양성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한미 양국이 이번에 합의한 기술-인재 협력이 앞으로 다양성을 인정하는 인재 양성 정책의 첫걸음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