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중에 ‘디지털 정부’ 성과 홍보…“시스템 전반 재점검 해야”
정부 전산망이 일주일 동안 4차례나 차질을 빚는 등 ‘먹통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사고 초기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하다 장애 발생이 반복된 만큼, 국가 전산 서비스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서울정부청사에서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원인 및 향후 대책 브리핑’을 열고 “17일 발생한 행정 전산망 장애 원인은 라우터(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장치) 부품 문제”라고 밝혔다.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태스크포스(TF) 공동팀장인 송상효 숭실대 교수는 “다양한 시나리오 상황에서 네트워크 영역에서의 접속 지연 및 이상 유무 확인 과정을 거쳤으나, 라우터 장비의 불량 외에는 다른 이상 현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라우터나 포트는 가정집에서도 컴퓨터나 네트워크를 연결할 때 사용하는 기초적인 연결 장비다. 행정망 서버를 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대전 본원과 광주 분원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라우터 연결 단자가 손상됐다는 게 TF의 설명이다.
해당 라우터 장비는 2016년 도입돼 사용기한 만료는 내후년까지다. 지방행정전산서비스를 관리하는 이재용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은 “노후화가 장비 불량의 원인은 아니다. 물리적인 부품의 손상이기 때문에 원인을 밝혀내기 상당히 어렵다”고 했다.
당초 정부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미국산 네트워크 장비인 ‘L4스위치’(트래픽을 분산해 속도를 높이는 장치)로 지목하고 18일 오전 장비를 교체했다. 다음날 전산망이 완전 정상화됐다고 해명했지만, 일부 기능에 지연 현상이 발견돼 추가 원인을 찾다가 라우터 문제를 확인한 것이다.
서보람 행안부 디지털정부실장은 “(19일) 브리핑을 하면서 장애 원인은 L4스위치로 추정된다고 말씀드리며 ‘추정된다’, ‘판단된다’고 했지 100%라는 것은 아니었다. 가능성이 크다고 했던 것”이라고 번복했다.
행안부는 19일 행정전산망 시스템 정상화를 알리며 지속적인 상황 관리를 약속했지만, 22일에는 주민등록시스템이 일시 먹통됐고 23일엔 조달청 ‘나라장터’ 시스템 접속이 중단됐다. 24일에는 정부 전자증명서‧모바일 신분증 서비스가 마비됐다.
일주일 새 유사한 사고가 4번이나 발생하자 일각에서는 ‘해킹설’ 등 외부 개입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연중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 연달아 터진 건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행안부는 “시스템별 장애 원인은 제각각이고, 해킹 징후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전산망 먹통 사태가 이어지자 ‘디지털 플랫폼 정부’라는 표현이 무색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행안부는 23일부터 부산 벡스코에 ‘2023 대한민국 정부 박람회’ 열고 디지털 플랫폼 혁신 사례를 보여주고자 했으나 전산망 장애로 진행에 일부 차질이 생겼고, 부스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주무 장관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디지털 정부와 공공행정을 선도한다’며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가 18일 급거 귀국했다. 이 장관이 먹통 사태 이후 20일 대책회의에서 말한 “지방행정전산서비스가 완전히 정상화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 역시 무용지물이 됐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17일 행정 전산망 장애의 경우 하드웨어(라우터 포트 불량) 문제라고 하는데, 소프트웨어 문제도 함께 연결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며 “행안부가 유사한 포트를 전수조사한다는 전제는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전산망 시스템 장애 원인이 다 다르다. 나라장터의 경우 외부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나머지 3개 시스템은 내부 관리 체계의 미흡 등이 원인”이라며 “전반적으로 전자정보시스템에 대한 대응 체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