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에도 상당수 서민은 여전히 불법 사금융에 고통을 겪고 있었다. 악질 사채업자들의 수법은 더 교묘해지고 집요해졌다. 이들은 일상 속에 스며들어 조금만 눈을 돌리면 ‘쉽고, 빠르게, 비밀 보장’이라는 문구로 소비자들을 현혹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사금융 척결’ 주문에 금융당국과 국세청, 경찰청 등은 이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정부 관계기관 외에도 정책금융기관과 시민이 직접 나서 불법 사금융을 뿌리 뽑기 위한 노력도 한창이다. 하지만 ‘밑바닥부터 훑어도’ 한계는 여전하다. 이에 본지는 실태와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한다.
도로 옆 상가ㆍ빌라 등 일상 속 불법대부 광고
‘공식등록업체’ㆍ태극마크 표기 있지만 ‘불법’
11월 29일 오전 10시께 차도 옆으로 미용실, 마트, 카페, 부동산중개업소, 음식점 등이 쭉 이어져 있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거리에 A 불법대부업체의 광고 전단 16장이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다. 명함 크기의 전단은 뿌린 지 얼마되지 않은 듯 깨끗하고 빳빳했다. 전단에는 “어떤 조건이라도 맞춰 드리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가게 앞 뿐만 아니라 인도 옆 주ㆍ정차된 자동차 사이, 가게 문틈, 마트 앞 쇼핑카트 사이 등 청소하기 어려운 구석에도 틈틈이 박혀 있었다. 파출소와 행정복지센터에서 스무 걸음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같은 날 자정, 다시 같은 거리를 찾았을 때 쇼핑카트 사이 A 전단 한 장은 그대로였다. 길 한가운데에 B 불법대부업체의 전단이 보였다. “200만 원, 바로 입금! 무보증ㆍ무담보 대출”
“요즘엔 잘 없을 텐데…시장에나 가야 있지”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한 지 20년이 넘은 주부 조 모 씨(51)는 평소 길거리에서 대출 전단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부동산중개업소, 카페, 음식점이 모여있는 거리 바닥에 아침 9~10시쯤 뿌려져 있어요.” 김 모 씨(60)는 직장이 있는 충남 천안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전히 대부업 광고 전단을 많이 본다고 말했다. 김 씨가 일하는 사무실 앞에도 같은 전단 네다섯장이 흩뿌려져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오전에 오토바이 운전자가 한 손으로 전단 여러 장을 쫙 뿌리고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자칫 가게 창문이 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단 묶음을 ‘퍽’ 소리 나게 던지고 가더라고요.”
거주지나 주된 활동 지역에 따라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회사원 김 모 씨(25) 역시 버스와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출퇴근 길에 불법사금융 전단을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10월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 수사 결과 미등록 대부업자 네 명이 오토바이를 이용해 포천시, 남양주시, 구리시 일대에 명함형 광고 전단 11만9700장을 무작위로 살포한 것이 적발됐다.
‘관심이 없어서’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기자도 우리동네지킴이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야 바닥에 놓인 대출 전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법대부업 광고 전단은 전통시장, 산업단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동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기자는 9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불법사금융 ‘우리동네지킴이’로 활동했다. 불법사금융 우리동네지킴이는 불법사금융 증거 확보와 사례발굴로 불법사금융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올해 처음으로 시작한 활동이다. 100명 모집에 활동을 시작한 지킴이는 98명이었다. 전국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서금원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고 지역별 균형을 고려해 무작위로 추첨 선발된다.
‘우리 동네를 지킨다’는 점에 흥미를 느껴 신청한 기자는 선발된 이후 20장짜리 교육 자료와 불법사금융 사례, 위험성을 알리는 온라인 교육 2개를 이수한 이후 본격적인 지킴이 활동에 나섰다. 석 달간 우리동네지킴이로 활동하며 발걸음이 닿는 거리와 시장,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기자가 신고한 미등록 대부업체 광고물은 20개였다.
불법대부업 광고는 ‘도로 옆 상가’에서 많이 보였다. 기자가 신고한 불법대부업광고 전단 18개 중 16개가 차도 바로 옆에 있는 상가 근처에서 발견됐다. 오토바이를 이용해 살포가 쉬운 도로변이 타깃이 됐다. 시장에서는 불법대부 광고물을 보기 힘들었다. 영동전통시장과 일산시장·남대문시장·영등포전통시장에서는 한 장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영등포전통시장에서 10년째 슈퍼마켓을 운영 중인 유 모 씨(55)는 “1년 전쯤에는 모르는 새에 바닥이나 탁자에 대출 광고지를 놓고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서금원 관계자는 “시장 상인이 일수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지자체에서 시장을 집중적으로 관리, 단속하고 있고 시장 자체적인 정화작업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는 공정특별사법경찰단이 2020년부터 도내 전통시장 11곳과 산업단지 4곳을 방문해 피해 상담, 신고, 구제 절차를 안내하는 ‘찾아가는 불법사금융 피해 예방상담소’ 사업을 진행 중이다. 서울시 역시 매년 추석 등 연휴를 앞두고 전통시장을 집중적으로 단속해왔다.
활동 기간 발견한 전단 18개 중 14개에는 ‘공식등록업체’라고 쓰여 있었다. 이 중 3개에는 ‘공정거래위원회’라는 글귀와 로고가, 1개에는 태극마크까지 있었다. 과거 OK금융 산하 대부업체였던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 마스코트 캐릭터 ‘무과장’이 그려져 있는 전단도 있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니 14개 모두 미등록 대부업자였다. 등록 대부업으로 오인하게 하려는 불법대부업자의 ‘꼼수’다.
명함 크기밖에 되지 않는 작은 전단에는 많은 정보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전단에 나와 있는 ‘우대 대상’, ‘대출 가능자’를 보면 누가 불법대부업에 쉽게 노출될 가능성이 큰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자영업자였다. 또 제도권 금융에서는 대출받을 수 없는 신용불량자들에게 신용조회 없이 무조건 돈을 빌려주겠다는 문구가 쓰인 경우도 많았다. 이 밖에 업소종사자, 일용직 근무자, 여성을 특별 우대한다고 적힌 전단도 있었다. 소득이 없는 대학생과 주부 역시 불법대부업이 주된 대출 대상으로 삼는 이들이었다.
온라인에도 불법대부 광고물이 넘쳐났다. 인스타그램에서 ‘일수’ ‘당일대출’ 등을 검색해 보니 57만7000개가 넘는 게시물이 나왔다. 그러나 활동 기간 온라인 게시물 신고는 두 건에 그쳤다. 주로 카카오톡 아이디가 쓰여 있거나 다이렉트 메시지(DM)를 통해서 대출 문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동네지킴이’ 신고 대상은 국내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불법대부 광고물이다. 카카오톡 아이디는 상대방을 특정할 수 없어 제재가 불가능하다.
불법사금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누구나 언제든지, 신용조회 없이, 당일 즉시 대출’을 해준다는 불법대부업에 손을 뻗을 수 있는 환경이 우리 주변에 이미 갖춰져 있었다. SNS에도 검색만 하면 ‘쉽고 빠르게’ 돈을 빌려주겠다는 게시물이 수십만 개 나왔다.
서금원 관계자는 불법대부업에 노출되는 것은 ‘타이밍’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우리 동네’를 지키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돈이 급하게 필요하지 않은 평소에는 불법사금융 광고가 눈에 안 들어와요. 주의하라는 방송이나 안내를 아무리 해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관심이 없어요. 그러다가 돈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전단 등이 눈에 들어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