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70주년…다양한 업권 모여 금융투자협회 역할 강화
하이일드펀드 6년만 재도입…BBB 저신용 기업 자금 공급
CFD·내부통제 부정적 이슈 맞아 BDC·법인지급결제 차질
부동산 PF, 증권사별 손실 파악해 시장 위험에 선제 대응
내년에는 사적연금 활성화, 주가부양, 금융중심지 활성
'세금혜택=부자감세' 인식 버리면 투자자 윈윈(Win-win)
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만난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취임 첫해를 돌아보며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의지는 굽히지 않았다. 1988년 대한투자신탁에 입사한 후 2016년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까지 올라 사장직을 수행했던 서 회장은 올해 초 운용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금투협회장에 취임해 이제 금융투자업계 전체를 대변하고 있다.
서 회장은 “그간 회원사로만 협회를 봐왔는데, 협회장이 되고 보니 협회의 역할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회원뿐만 아니라 타 업권, 감독기관, 국회 등 여러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정부부처만 하더라도 금융위원회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다양한 부처와 접점이 있는 사안이 다수”라고 밝혔다.
1953년 전신인 대한증권업협회로 출범한 한국금융투자협회의 회원사는 이날 기준 총 569개사다. 증권사 61개, 자산운용사 325개, 선물사 3개, 부동산신탁사 14개 등 다양한 업권의 회원사들이 모여있다. 금융투자협회의 역할이 자본시장에만 국한될 수 없는 이유다. 지난달 25일로 정확히 창립 70주년을 맞이했다.
올해 주요 성과로 증권사 일반환전 허용과 하이일드펀드 과세 특례를 꼽았다. 2014년 도입됐다가 3년 만에 일몰된 하이일드펀드는 비우량채권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다. 동양사태 이후 위축된 BBB 신용도 회사채의 자금공급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저신용 중소형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재도입을 필요로 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6년 만에 돌아온 하이일드펀드는 올해 고금리로 침체된 시장 상황에서도 수요예측 결과를 통해 활기를 불어넣었다. 실제로 무보증 공모 회사채 시장의 수요예측 규모는 상반기 22조에서 고금리 장기화 우려가 커진 하반기 들어 10조8000억 원으로 급감했지만, BBB등급 회사채의 수요예측 자금은 5000억 원대를 유지했다. 같은 기간 A등급과 BBB등급 회사채의 수요예측 비중도 각각 17.6%에서 20.5%, 2.2%에서 3.3%로 오히려 증가했다.
서 회장은 “하이일드펀드가 BBB등급의 수요기반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며 “비우량기업의 회사채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기회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향후 세제혜택 기한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 과세 특례는 내년 가입자까지만 세제혜택이 적용될 수 있다. 또 투자위험도를 고려해 1인당 세제혜택 한도도 기존 3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상향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반환전 허용도 증권업계에서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이다. 지난 7월부터 외국환거래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초대형 투자은행(IB)뿐만 아니라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일반환전이 가능해졌다.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목적’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던 환전업무가 일반 개인 고객까지 허용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외환시장 경쟁이 촉진돼 수수료 절감 등 소비자들의 편의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CFD(차액결제거래) 사태와 금융투자회사의 내부통제 미흡,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등 일부 암초도 맞닥뜨렸다. 이러한 사고들은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금융투자협회가 위축된 국내 벤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진행해오던 BDC(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 도입, 법인지급결제, 공모펀드 직상장 등을 멈춰 세우기도 했다.
서 회장은 “해외부동산 부실 등 부정적 이슈도 공존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협회 자체적으로 내부통제 모범사례를 전파하고, 준법감시인 교육을 강화하는 등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년에도 금융투자업계를 둘러싼 금융환경이 녹록치 않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부동산 PF, ELS(주가연계증권)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시장 위험요인에 대해 면밀히 대응하는 중”이라고 했다.
부동산 PF 자금시장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대비 안정된 모습이지만 계속해서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중이다. 내년까지 시장안정 조치들이 연장 운영되면서 완충장치를 해줄 것”이라며 “각 증권사별로 사업장의 신용리스크와 손실을 미리 파악해 부실채권 매각, 자금조달 등 선제적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했다.
최근 뜨거운 공매도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제도를 돌아보고 불합리한 시스템은 개선할 좋은 기회라고 봤다. 서 회장은 “무차입 공매도 적발 시스템 개발도 과거에 한 번 얘기가 나왔을 때 ‘어렵다’는 결론으로 끝난 사안인데, 그 사이에 우리 IT기술이 많이 발달했으니까 지금은 가능한 상태가 됐을 수도 있는 것”이라며 “어디까지 확장 가능한지, 안 된다면 왜 안 되는지를 충분히 시장과 설명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금융투자업계가 영향력을 확장하기에 가장 높은 시장 잠재력을 지닌 해외국가로 인도를 주목했다. 지난해 세계 5위 경제 대국에 올라선 인도는 올해에도 연평균 6.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 회장은 지난달 아시아증권포럼(ASF) 연차 총회 참가를 위해 인도 뭄바이를 찾아 현지 글로벌 금융사들을 만나고,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 등을 방문했다.
특히 구자라트 주에 위치한 디지털금융특구 ‘기프트 시티(GIFT, Gujarat International Finance Tech)’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서 회장은 “인도의 금융시장 시가총액은 자국 GDP와 비슷한 5000조 원 규모로 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젊은 IT 인력이 많아 저비용으로 업무 효율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밝혔다.
인도 정부는 시장 자본시장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전폭적인 정책 지원과 경제 개혁을 추진 중이다. 국가적 캠페인으로 적립식 투자를 장려하면서 매달 자산운용업계로 약 2조 원가량의 자금을 유입해 민간 투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또 외국인에 대한 규제나 정책적 차별을 철폐해 감독당국의 규제 정합성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 회장은 “GDP의 3분의 2가 내수 소비에서 발생하는 안정적인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내수기업의 안정적인 이익 성장세, 국내 금융시장으로의 자금 유입과 같은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었다”며 “금융 및 IT분야 기업을 유치하고, 해외 금융거래 경제특구(Special Economic Zone, SEZ)를 조성해 홍콩, 싱가폴을 능가하는 국제금융 허브로의 성장을 목표로 진행 중이었다”고 회상했다.
동시에 국내 금융투자회사들의 글로벌 투자은행(IB) 경쟁력 부족, 낡은 자본시장 인프라 한계 등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국내 증권사들의 지난해 해외법인 자기자본 규모는 8조8000억 원으로 2021년보다 13.3%가 증가했지만, 글로벌 IB나 아시아 주요 금융사들에 비해서는 규모나 역량 면에서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증권사 중 아시아 IB 리그 20위 권 내에 드는 곳은 아직 전혀 없다.
서 회장은 “우리도 20년 전에 금융허브 이야기를 꺼냈지만, 실질적 액션이 없이 1보도 전진을 못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자동차, 엔터테인먼트 등 웬만한 산업은 다 글로벌 순위에 올라있지만, 유일하게 진입하지 못한 게 금융투자업”이라며 “금융투자업도 제조업처럼 하나의 진흥 정책을 써서 탑 티어(Top-Tier)를 만들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내년 시장 성장을 위해 협회 차원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할 3대 과제로는 △사적연금 활성화 △주가 부양 △금융중심지 활성을 꼽았다. 국민들의 노후자산이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연금캠페인, 연기금 분산투자 구조의 디딤펀드 등을 추진하고, 장기투자 문화 형성에 노력한다는 것이다. 장기투자를 위해 배당소득에 대한 세제 혜택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와 함께 협회장 출마 공약으로 제시했던 법인지급결제, 공모펀드 활성화 등을 빠짐없이 챙겨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서 회장은 “내년에는 시장에서 전통적으로 말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좀 더 해소하고 싶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적으로 배당 부족, 자사주 소각 등을 얘기할 때면 세금 문제가 항상 걸린다”며 “또 세금 혜택을 이야기하면 ‘부자 감세’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데 ‘작은 걸 주고, 큰 걸 얻자’라고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자본시장도 서로가 윈윈(Win-win)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대담 = 김남현 자본시장부 부국장, 정리 = 정회인 기자, 박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