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전고체 사업 추진팀 설립
R&D 투자 확대…저가형 배터리 벽 넘을까
‘차세대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국내 배터리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리튬·인산·철(LFP), 나트륨이온 배터리 등 저가형 배터리의 영향력이 커지는 가운데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롯데케미칼은 최근 리튬메탈 배터리의 성능과 안정성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리튬메탈 배터리는 음극재를 리튬금속으로 대체한 배터리다. 흑연을 사용한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에너지밀도가 10배가량 높고 충전 속도가 빨라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리튬메탈 배터리는 음극 표면에 발생하는 ‘덴드라이트(Dendrite)’ 현상으로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고 화재나 폭발 위험이 높은 한계가 있었다. 덴드라이트는 배터리 충전 과정에서 음극 표면에 리튬이 전착돼 나뭇가지 모양의 결정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LG에너지솔루션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동 연구팀은 ‘붕산염-피란 (borate-pyran) 기반 액체 전해액’을 세계 최초로 적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음극 표면의 고체 전해질 층(SEI)을 치밀한 구조로 재구성해 전해액과 음극 간 부식 반응을 차단하도록 한 것이다.
해당 기술을 적용한 리튬메탈 배터리는 한 번 충전하면 900km를 달릴 수 있는 높은 에너지밀도를 자랑한다. 고성능 전기차에 적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주행 거리는 600km 수준이다. 400회 이상의 재충전이 가능할 정도로 수명 안정성도 확보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리튬메탈 배터리에 활용되는 분리막 코팅 제조 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고 국내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 고분자계 고체전해질 기반 소재를 분리막에 코팅해 덴드라이트를 억제해 리튬메탈 배터리의 내구성을 개선했다. 롯데케미칼은 “500사이클(충·방전 횟수) 이상에서 90% 이상의 용량 보존율을 보여 코팅이 없는 분리막 대비 약 30% 이상의 내구성 향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도 가까워지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이온을 전달하는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한 것이다. 액체 전해질보다 폭발 위험이 적고, 분리막이 필요하지 않아 에너지밀도를 높이고 충전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삼성SDI는 이달 초 정기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중대형전지사업부 내 ‘ASB(All Solid Battery·전고체 배터리) 사업화 추진팀’을 신설했다.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상용화 시점을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삼성SDI는 2027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목표로 올해 3월 수원 연구소 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고, 4분기부터 고객사에 시제품 공급을 시작했다.
배터리 업황 둔화에도 불구하고 배터리업계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각사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R&D 투자액은 총 1조7874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5884억 원)보다 12.5% 증가했다.
국내 배터리 업체가 초격차 기술 경쟁에 주력하는 건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LPF, 나트륨이온 배터리 등 가격이 저렴한 배터리들의 점유율이 빠르게 높아지는 상황과 맞물린다.
중국 CATL은 지난 8월 성능을 높인 LFP 배터리 ‘션싱’을 공개했다. BYD는 화이화이홀딩그룹과 나트륨이온 배터리 사업 계약을 체결하고 연간 3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생산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스웨덴 노스볼트는 에너지밀도를 상용화 수준까지 끌어올린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다만 차세대 배터리는 아직 기술 개발 단계인 만큼 시장 침투 속도가 빠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격 경쟁력 확보도 숙제다. 업계 관계자는 “저가형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빠르게 늘고 있는 건 그만큼 가격 경쟁력도 중요하다는 뜻”이라며 “양산에 성공하더라도 가격 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