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젠·진코어·앱클론 등 개발…임상은 아직 [유전자가위 FDA 승인②]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를 활용한 치료제가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품목 허가를 받으며 국내에서 유전자가위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3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미국 버텍스파마슈티컬스와 스위스 크리스퍼테라퓨틱스가 공동 개발한 ‘카스거비(Casgevy)’가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품목 허가를 받았다. 이에 앞선 지난달 16일에는 영국 의약품‧의료기기안전관리국(MHRA)가 해당 치료제를 승인했다.
카스거비는 12세 이상 겸상 적혈구 빈혈증과 베타 지중해빈혈 환자를 위한 치료제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이 적용됐다. 유전자가위는 DNA 절단 기능을 가진 도구로, 비정상적 유전자를 잘라내거나 편집할 수 있어 희귀·난치병 등의 유전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는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리시던스 리서치는 세계 유전자 편집 시장 규모가 올해 80억4000만 달러(10조6000억 원)에서 2032년 299억3000만 달러(39조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서는 임상에 진입하지 못했지만 유전자가위 치료제 개발 연구가 활발하다
툴젠은 희귀 유전성 질환 샤르코마리투스병(CMT) 치료제 ‘TGT-001’를 개발하고 있다. 이 질병은 말초신경 퇴화를 일으켜 근위축, 근력약화를 일으키는 유전성 신경질환이다. CMT 환자의 약 50%는 PMP22 유전자 과발현으로 나타난다. 툴젠은 이를 타깃하는 CMT1A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시장에는 아직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다.
이외에도 △습성황반변성 △B형 혈우병 만성 △HBV 감염 △CAR-T △CAR-NK 치료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진코어는 초소형 유전자가위 기술인 ‘TaRGET’ 플랫폼으로 망막질환, 신경근육질환, 중추신경계(CNS)와 관련된 유전자를 교정하는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TaRGET은 CRISPR-Cas9 대비 크기가 절반 이하 수준인 CRISPR-Cas12f를 사용했다. 지질나노입자(LNP)와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를 이용해 TaRGET 유전자가위를 조직에 전달해 유전자를 교정해 치료한다.
엔세이지는 CRISPR-Cas12, 13을 활용해 유전성 질환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2024년 미국 자회사를 통해 적용 유전질환에 대한 전임상을 마치고, 글로벌 임상 1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의 유전자 편집 원천 기술 개발 사업 과제에 선정돼 연구비 25억 원을 받았다.
지플러스생명과학은 지난해까지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해 바이오 의약품 생산 플랫폼을 개발하고 기술이전도 했지만, 현재는 치료제 개발은 보류 상태다. 다만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한 종자 사업을 하고 있다.
CAR-T(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 치료제 개발 기업 앱클론은 12일 미국 유펜의과대학과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한 CAR-T 치료제를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앱클론은 지난해 지플러스생명과학으로부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전받았다.
국내 유전자가위 치료제는 걸음마 단계지만, 업계에서는 최초의 유전자가위 치료제 승인이 향후 국내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임상에 진입한 적이 없는 만큼 임상이나 허가에 대한 기준이 설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봉희 엔세이지 대표는 “국내는 연구자나 기업들의 우수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유전자가위 치료제 임상이 진행된 적이 없어 효능이나 안전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며 “이번 기회로 미국의 허가 기준을 활용해 제도를 마련한다면 국내 유전자가위 치료제 개발이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용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진코어 대표)은 “이번 기회로 관련 시장 투자 환경이 살아나고, 국내서 유전자가위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이 확신을 갖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김 책임연구원은 “국내 유전자가위 기술력은 세계 수준이다. 다만 임상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유전자가위 치료제의 임상 디자인, 환자 모집, GMP 시설 등은 열악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