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 직원 솜방망이 처벌…1심 실형 6.1%
무죄‧집행유예 88%…‘초범‧반성’ 감경사유
기술유출범 대부분 재범률 낮은 ‘한탕주의’
“감경요소 악용 우려…초범 처벌 강화해야”
한 직원이 회사의 기술을 빼돌려 경쟁사에 넘기고 그 대가로 거액의 연봉을 받는다. 기술을 유출당한 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입지만, 직원은 끝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사건이 허무하게 마무리된다. 기술유출 범죄 대부분은 이렇게 ‘한탕’으로 끝난다.
전문가들은 기술유출 사건에 적용되는 감경요소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회복할 수 없는 피해 회사와 달리 유출 직원은 재판에서 ‘초범’, ‘진지한 반성’ 등을 이유로 감경받는다. 기술유출 범죄 특성상 재범이 어려운 만큼 ‘한탕주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25일 대검찰청이 한국과학기술원(연구책임자 전우정 카이스트 교수)에 용역과제로 발주한 ‘기술유출 피해금액 산정 등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기술유출 사건의 특징을 △화이트칼라 범죄 △전‧현직 직원에 의한 발생 △대부분 초범이라고 정하고 있다.
전우정 교수는 “요즘 기술유출 사건 추세는 기술을 빼 온 뒤 해외 회사에 취업하거나 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전 직장을 퇴사하며 유출하는 형태”라며 “이미 그 회사의 알짜 기술이 유출된 상황이니, 또 유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술 유출은 사실상 국부를 빼돌린 간첩 행위로 봐야한다”며 “외국에선 산업스파이로 규정해 엄하게 처벌하지만 한국은 초범, 화이트칼라 범죄라는 이유를 들어 일반적인 형사 기준으로 보니 처벌이 굉장히 약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산업의 근간마저 흔들 수 있다 보니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는 6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의견서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1심 사건 33건 가운데 무죄(60.6%)와 집행유예(27.2%)가 87.8%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반면 실형과 벌금 등 재산형은 각각 2건(6.1%)에 불과했다.
또 대검 보고서 자료를 인용해 영업비밀 침해 판결문 60건에 기술된 감경 요소 중 ‘형사처벌 전력 없음(32건)’과 ‘진지한 반성(15건)’이 가장 많다고 짚었다. 낮은 양형기준도 문제가 되지만, 초범이라는 점이 형 감경에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기술 유출 범죄는 범행 동기와 피해 규모 등이 일반 빈곤형 절도와 다르기 때문에 초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화이트칼라 범죄의 특성상 감경 요소를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대만과 미국의 사례를 들었다. 대만은 지난해 국가안전법 개정을 통해 군사·정치 영역을 넘어 경제·산업 분야 기술 유출도 간첩 행위에 포함했고, 미국은 연방 양형기준을 통해 피해액에 따라 범죄 등급을 조정해 형량을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윤 연구위원은 “미국은 선고전조사제도를 통해 피해 회사의 손해액을 산정하고, 양형지침에 적용하는 것이 강제사항”이라며 “일본의 경우 기술유출 사건을 다루는 전문 법원이 있고 전문가 증언이나 자문위원을 활용해 손해액을 산정할 감정 규정을 마련해놨다”고 했다.
이어 “한국은 손해액 산정 기준도 없고, 전문 법원도 없다. 양형기준도 미국처럼 강제가 아닌 권고에 불과하다”며 “기술유출만으로도 감경사유 없애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 손해액을 산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실형을 선고하는 등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15~2020년 형사사건의 1심 무죄 평균율은 1% 미만인데, 산업 기밀유출 사건 1심 무죄율은 23%다. 굉장히 이례적인 수치”라며 “구속 요건이 어렵거나 검사가 입증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구속 요건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기술유출 사건은 발생할 수 있는 손해에 비해 이득이 커서는 안 되는 만큼, 양형기준도 대폭 높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