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민간전문가 등 1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한 말이다. 우리 금융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금융상품을 다양화하고, 금융당국이 미래 일자리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과감한 금융혁신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이었다.
1년여 만에 이 꿈은 실체도 없이 허망한 그림자가 됐다. 외국계금융사 유치는 커녕 초과이익 환수 등 강도높은 비판만 커지면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한국 시장을 축소하거나 정리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영국 글로벌 컨설팅 전문 기관 지옌(Z/Yen)이 글로벌 금융도시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제34차 국제금융센터지수(GFCI)를 보면 서울은 직전 조사보다 한 계단 내려앉은 11위를 기록해 이제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우리나라의 금융 경쟁력이 다른 국가에 비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 각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규제의 족쇄에 묶여있던 금융업을 핵심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금융과 정보기술을 접목한 핀테크(Fin-Tech)가 전통 금융의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신흥강자로부상하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패권을 선점하기 위해 금융과 비금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격전장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국내 금융산업에서 여전히 ‘혁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금융은 없다. 금융 혁신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비자 보호를 강화할 수 있는 합리적 규제가 요구되지만, 기존 규제를 ‘찔끔’ 손질하면 오히려 새로운 규제가 ‘대폭’ 늘어난다. 금융상품들은 규제 앞에서 다양성을 잃고 획일화되는 것이 현실이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정치권의 전리품’으로 전락해 이미 ‘관치금융’이라는 오명을 쓴지 오래다.
특히 현 정부가 들어선지 2년이 다 되어감에도 금융산업에 대한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역대 정부의 취임 2년차 금융 성적표를 돌아보면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이명박 정부의‘메가뱅크’,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금융’ 등 첫해 그렸던 밑그림을 바탕으로 금융 정책을 실행에 옮기던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금융업계도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 시스템 도입, 인력 확보 등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보다는 당국의 관치와 규제에 순응해 손쉬운 돈벌이에만 기대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10년간 평균 임기가 5.2년에 그치는 금융지주 CEO들은 장기적인 안목 없이 단기 성과에만 치중하고 있다. 2019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S&P(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기업 CEO들의 평균 임기는 10.2년이었고, 세계 최고 성과를 거둔 리더들은 평균적으로 15년간 자리를 유지했다.
이렇다 보니 금융이 한국 전체 경제에 기여하는 역할은 줄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금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기준 미국 8.41%, 영국 7.79%, 중국 7.78%인데 한국은 5.42%에 머물고 있다. 금융 산업의 고용 창출 기여도 역시 2.89%로 미국 5.07%, 영국 3.29% 등에 비해 한참 떨어져 있다.
금융권이 전체 산업의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 3.1%에서 2019년 2.9%, 2020년 2.8% 2021년 2.9%, 2022년 2.7% 로 해마다 낮아지는 추세다. 금융업 취업자는 이 기간 84만 명에서 77만4000명으로 줄어들어 5년 새 일자리 6만6000개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