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하락 예상보다 빠르게 반영
각종 경제지표들 조기 금리인하 전망 설득력 훼손
시총 상위기업 어닝쇼크에 내수 업종 부진 우려
주인을 앞서가던 개(주가지수)가 다시 주인(실물경제)에게 돌아오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작년 10월 중순부터 연말까지 이어진 금리인하 기대에 공매도 금지·주식 양도소득세 완화 효과가 더해지며 상승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속도 관점에서 오버슈팅 영역에 진입했고, 새해 들어 이를 돌려놓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 등 덩치 큰 기업들의 어닝쇼크도 지수 상승 기대감을 끌어내리고 있다.
10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9.26포인트(0.75%) 하락하며 2541.98에 마감했다. 이달 3일부터 6거래일 연속 하락세다. 지난해 12월 한달간 120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던 코스피지수는 올해 들어 7거래일 새 113포인트 하락했다.
시장과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하를 놓고 벌이고 있는 팽팽한 줄다리기는 최근 연준으로 줄이 끌려가는 모습이다. 기준금리에 대한 시장의 기대(연내 6차례 인하)와 달리 작년 12월 연준의 경제전망요약(SEP)에서 나타난 연준 위원들의 전망치는 3차례다. 점도표에서는 기준금리의 상방 리스크가 하방 리스크보다 더 크다. 기준금리를 3차례 이하보다 적게 인하를 전망하는 위원의 비중이 더 크다는 의미다.
12월 고용보고서는 연준의 스탠스를 뒷받침한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비농업 고용은 21만6000명 증가했다. 시장 예상치인 17만 명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임금상승률도 전년 대비 4.1%로 예상치인 3.9%를 웃돌았다. 가팔라진 임금 상승세에도 노동수요는 여전히 강했다. 이러한 전개상황은 물가의 상방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승진 하나증권 연구원은 “경기둔화 및 물가 하향 안정 전망을 반영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된 금리 하락은 역설적으로 경제 심리지표의 반등과 기대 인플레이션의 하방 경직성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조기 금리인하 전망에 대한 설득력을 훼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달 11일 예정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기준금리 동결 전망이 우세하다. 물가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며,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도 커 금리를 조정할 여력이 없다. 현재 기준금리는 연 3.50%다.
신한투자증권은 “수출 개선에도 소비 부진 지속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안 등이 상존한다“면서 ”그럼에도 불확실한 미국 금리 인하 시점에 따른 내외 금리차 확대, 부동산 가격 등으로 인한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긴축 기조 유지에 무게를 둔다”고 진단했다.
인플레이션 우려는 질기고도 억센 여전한 리스크다. 최근의 가파른 물가 오름세 둔화는 금리 인하 기대에 힘을 실어주지만, 디스인플레이션 속도를 위협하는 요인들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는 운송비용 증가로 이어져 인플리에션 공급 기여도를 높일 수 있다. 또 엘니뇨 현상에서 기인한 가뭄으로 파나마 운하 통행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파나마 당국은 올해 2월부터 하루 통행 선박수를 25척에서 18척으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이에 더해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지난 두 달간 완화된 금융여건은 총수요 압력을 자극해 디스인플레이션 속도를 다시 늦추게 할 가능성이 있다.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둔화세를 크게 보이지 않으면 연준의 3월 금리 인하 기대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로리 로건 미국 댈러스 연은 총재는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테이블 위에서 치워버려서는 안 된다”며 인플레이션 재상승을 차단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재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국내 인플레이션 전망치도 상향조정 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국내 소비자물가 전망을 기존 2.6%에서 2.7%로 수정하면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기존 5월에서 7월로 변경했다.
기업들의 실적 우려는 주가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국내 시가총액 1·3위인 삼성전자와 LG엔솔은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연결기준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2조8000억 원으로 잠정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전년 대비 35% 감소한 수치로 3조~4조 원대 영업이익을 예상했던 시장 전망치를 크게 밑돌았다. LG엔솔은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이 3382억 원을 기록하며 시장 기대치(5900억 원)를 밑돌았다.
올해 수출과 내수 경기가 엇갈리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점도 기업 실적 전망을 불안하게 만든다. 반도체와 자동차, 일반 기계 중심의 수출은 개선 흐름을 보이고, 이와 연관된 제조업 생산도 반등하고 있다. 그러나 고금리 기조 장기화와 얼어붙은 부동산시장으로 소비와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서비스업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내수는 부진한 흐름을 보인다.
이남강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높은 가계부채와 고금리로 인한 이자부담이 소비를 제약하고, 자금조달 여건 악화 및 부동산PF 이슈가 투자를 제약하는 형국”이라며 “경제심리도 여전히 부정적이고 내수판매와 관련된 기업들의 심리는 수출에 비해 부정적이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