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혀있는 법인 투자…BTC 주요 거래국 중 유일
가상자산 거래소 줄폐업 예상…업계 위축 전망
거래량 개인 관심 높지만…제도는 글로벌 역행
금융당국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와 국내 자산운용사의 발행을 금지하자, ‘갈라파고스 정책’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그림자 규제 및 규제 공백이 한국을 ‘코인 갈라파고스’로 전락시킨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이 많아 거래량은 높지만, 규제 방향이 세계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은 비트코인 거래량이 많은 나라 중 하나이지만,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기업 체이널리시스의 2023년 가상자산 채택 지수에는 27위에 불과하다. 전년 대비 4순위나 밀렸다.
먼저 국내에서는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선 허용된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가 막혀 있다. 명문화된 금지 조항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국내 거래소에서 은행에 법인 계좌 개설을 요청하면, 은행이 금융당국 눈치에 계좌를 열어주지 않는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대표적인 그림자 규제라고 입을 모은다.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지금 우리 금융 당국은 법적 근거 없는 행정지도로 다른 나라에는 없는 법인 진입을 막고 있다”면서 “이는 투자자 보호에도 역행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할 경우, 돈세탁 및 비자금 문제 등을 우려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법인 및 기관 투자가 이뤄져야 국내 시장의 고질적 문제인 시세조종(MM) 및 상위 몇몇 거래소에 거래량 집중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국내 MM 업체들이 운용사 등 기관과는 자금 규모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시세조종을 하려고해도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현재 비트코인 거래 상위 5개국 미국, 한국, 일본, 영국, 튀르키예 중 한국에서만 법인이 가상자산 보유 및 거래를 하지 못한다. 나머지 국가는 모두 KYB(Know your Business·법인 고객 확인 절차)를 위한 제도 및 상세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가상자산 결제 서비스도 국내에서는 막혀 있다. 세계 곳곳에서 가상자산 결제가 가능한 지점과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는 흐름과 정반대이다. 비트코인 결제 현황 플랫폼 'BTC맵'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비트코인으로 결제 가능한 지점은 15일 기준 9997 곳으로 곧 1만 곳을 돌파할 전망이다. 지난해 1월 15일 8796 곳 대비 13.65% 증가했다.
이미 비자·마스터·페이팔 등 글로벌 금융 회사는 가상자산 거래소와 협업해 가상자산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비자는 코인베이스, 크립토닷컴, 비트페이 등 대부분 주요 거래소와 손을 잡고 직불카드(Debit card) 서비스를 제공한다. 바이낸스와는 지난해 7월 미 금융당국의 규제 여파로 파트너십을 중단했다.
한때 가상자산 결제 서비스를 내걸었던 국내 업체 페이코인은 금융당국에서 서비스 이행 조건으로 내걸었던 은행과의 실명 계좌 계약을 체결하지 못해 지난해 3월 국내 사업을 중단했다. 페이코인은 현재 싱가포르 등 해외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은행과의 원화계좌 계약 체결 역시 그림자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원화 거래소 운영을 위해 요구되는 진입 장벽이 높은 것과는 별개로, 준비금 30억 등 지침을 지켜도 업계에서는 사실상 신규 진입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고팍스가 전북은행과 계약을 맺은 2022년 2월 이후로 은행과 계약을 체결한 거래소는 없다.
사업 확장이 불가하니 서비스를 중단하는 거래소가 속출하고 있다. 이미 코인빗, 캐셔레스트, 후오비 코리아 등이 문을 닫았다. 업계에서는 코인마켓 거래소의 적자가 누적된 만큼, 올해 문 닫는 거래소가 더 늘어날 거라 보고 있다. 게다가 올해 11월부터 국내 가상자산사업자들은 사업자 갱신신고를 앞두고 있어 이를 전후로 폐업하는 곳이 속출할 전망이다.
1월 기준 국내 가상자산 사업자(VASP) 37곳 중 27곳이 거래소이다. 문 닫는 거래소가 늘어날 경우, 향후 국내 가상자산 업계가 위축될 전망이다.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주변국들이 차세대 금융 허브를 꿈꾸며 웹3 산업 진흥에 나선 것과는 정반대 흐름이다.
테라-루나 사태부터 하루-델리오 입출금 중단 등 그간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만큼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규제 고삐를 강하게 쥘 수 밖에 없다. 업계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발행 및 유통 등 구체적인 행위 규제를 담은 업권법 도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7월 시행되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시세 조종 금지 및 처벌을 주로 하고 있어, 업계 전반을 다루지 못하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지금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를 위한 조항 등은 모두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서 다룬다. 한데 특금법은 원래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법이어서 법의 본래 특성과 체계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은 지난해 6월 스테이블 코인 관련 법안을 도입하는 등 웹3 산업 진흥 위해 관련 제도를 속도감 있게 다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4월 총선 이후에야 가상자산 2단계 법안(업권법)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 2단계 입법에서는 산업의 육성과 진흥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면서 이어 “발행 규제와 가상자산 운용업·투자자문업 등 서비스업자에 대한 규제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