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약값과 갑싼 비난에 “마음까지 지끈” [아픔 나누기, 그리고 희망]
“두통으로 머리 아파 병원 오기까지 평균 10년”
두통 질환을 관리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환자들은 고통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경험하지만, 진단과 치료를 위한 지원은 미비한 실정이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두통 환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22년 기준 112만4089명이 두통으로 진료를 받은 것으로 집계하지만, 병원을 찾지 않은 ‘숨은 환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두통학회가 편두통 환자 2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초로 편두통을 지각한 후 병원에서 확진 받기까지 11년 이상 소요된 환자가 83명에 달해 40%를 차지했다. 전체 환자의 평균 확진 기간은 증상 지각 후 10.1년으로 파악됐다.
두통을 질병으로 보지 않는 사회적 인식이 진단을 더디게 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두통은 한 번 발생하면 짧게는 15분, 길게는 3시간까지 지속된다. 환자들은 구역감, 시야 장애, 집중력 저하를 경험하지만, 빈번히 '꾀병'이라는 의심을 받아 위축된다.
김모(50·여) 씨는 “20대에 처음으로 진단을 받기까지 내과 여러 곳을 다니면서 고통을 참았다”라며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일반 두통약을 한 번에 여러 개 복용하기도 했지만,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과 의사가 두통이라는 질환에 대해 모르는 경우도 많아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라고 토로했다.
국내에는 테바의 ‘아조비(성분명 프레마네주맙)’와 릴리의 ‘엠겔러티(성분명 갈카네주맙)’ 등 두통을 완화하는 신약이 처방되고 있다. 이들 제품은 편두통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CGRP’를 차단해 편두통 발생을 예방하는 주사제다. 아조비는 2021년, 엠겔러티는 2019년 각각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다만, 건강보험 급여 조건이 까다로워 급여 혜택을 보지 못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앰겔러티와 아조비의 가격은 약 29만 원으로, 급여 적용 시 환자는 약 7만 원을 부담하게 된다.
이들 치료제를 급여로 처방받으려면 최근 1년 이내에 3종 이상의 편두통 예방 약제에서 치료 실패를 보여야 한다. 또 투여 시작 전 편두통장애척도(MIDAS)가 21점 이상이거나, 두통영향검사(HIT-6)에서 6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아울러 최소 1년 이상 편두통 병력이 있어야 하며, 투여 전 최소 6개월 이상 월 두통일수가 15일 이상이면서, 그중 한 달에 최소 8일 이상 편두통형 두통이 나타나야 한다.
주민경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국내 환자의 90%는 급여 조건을 만족하지 못해 비급여로 치료제를 투약하고 있다“라며 “일본, 호주, 영국 등 한국과 경제적 수준이 유사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급여 환경이 가장 까다롭다”라고 지적했다.
소아·청소년 환자의 고충은 더욱 크다. 치료제 사용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물론, 진료를 받을 기회를 얻기도 쉽지 않다.
이모(15·여) 양은 “아조비나 엠겔러티는 모두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허가 및 급여가 이뤄지고 있어 소아·청소년 두통 환자들은 지원을 받기 어렵다”며 “소아·청소년 두통 환자를 진료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드물어 진료 예약을 하면 1개월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군발두통 환자들은 자가 치료로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두통 완화에 효과적인 '산소 치료'가 존재하지만, 병원에서 의사에게 처방을 받을 수 없어 그림의 떡이다. 고압 산소를 사용하는 산소치료는 현재 내과 전문의의 호흡기 관련 치료에 대해서만 수가가 책정돼 있어, 신경과 전문의가 두통 환자를 치료할 때 활용할 수 없다. 산소통과 호흡기 등을 의료기기 판매처에서 구해 가정에서 자가 치료를 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주 교수는 “신경과 의사가 두통 환자에게 산소 치료의 방식이나 효과를 설명해줄 수는 있어도, 병원에서 직접 치료를 할 수는 없어 안타깝다”라며 “고압의 산소와 흡입 기구를 가정에서 비전문가인 환자가 혼자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우려했다.
두통 환자들은 학교나 직장에서 일상적인 활동에 제약을 받으며 정신 질환까지 경험한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임모(30·여) 씨는 “10년 전 진단을 받았을 당시 직장에서 두통이 올까 봐 불안감에 공황장애가 생겨 병가를 제출했었다”라며 “질병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꾀병이라는 의심을 받았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지금도 직장에서 두통이 찾아오는 상상을 하면 손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린다”라며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병가를 쓰게 되고, 불안해서 끼니를 거르기도 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