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경쟁력 높이려면 미국 IRA 못지않은 파격적 지원책 필요”
국내 배터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세제 혜택이나 보조금뿐 아니라 연구개발(R&D) 투자, 인력 양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김승태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정책지원실장은 2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2024 전기차 배터리 산업 및 최신 기술 콘퍼런스’에 참석해 “우리나라도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못지않은 파격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IRA는 배터리 핵심 광물과 부품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고,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또 미국 현지에서 생산된 배터리 셀에 대해 킬로와트시(kWh)당 35달러의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혜택을 제공한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받은 AMPC를 영업이익에 반영하고 있다.
일본도 ‘일본 축전지 산업 전략’과 ‘전략 물자 생산 기반 세제’를 통해 배터리 산업 부양 정책을 펴고 있다. 정부 차원의 투자 규모를 늘리고, 배터리와 반도체 등 전략 물자는 자국 내 생산량에 비례해 세금 우대 혜택을 주기로 했다.
김 실장은 “투자세액공제 직접환급제도 같은 과감한 세제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흑연 등의 핵심 광물을 만드는 기업에 생산 보조금을 주는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차세대 배터리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필요성도 논의됐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R&D 투자액은 1조2000억 원 수준으로, 같은 기간 반도체 R&D 투자 규모 15조8000억 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매출액 대비 R&D 투자액 비중도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상황”이라며 “지난해 말 차세대 배터리 개발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1172억 원 규모로 확정이 됐는데, 정부에서 R&D 예산이 대폭 늘어나야 배터리 기업의 기술 초격차 확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인력 양성을 위한 지원 확대, 사용 후 배터리 통합관리체계 구축, 국제 배터리 파트너십 구축 등도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김 실장은 “협회는 ‘배터리 아카데미’ 운영을 맡아 현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키울 계획”이라며 “사용 후 배터리에 대해서도 업계의 의견을 모아 정부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K-배터리의 입지가 늘어날 것이란 긍정적 전망도 나왔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2분기 49%에서 2025년 55%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황 부연구위원은 이날 발표에서 “계획된 투자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2025년 국내 기업의 미국 내 생산 능력은 447기가와트시(GWh)까지 늘고 시장 점유율도 50~60%까지 도달할 것”이라며 “유럽 시장은 2022년 기준 한국 기업이 64%를 점유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과반을 유지할 전망”이라고 했다.
이어 “어떤 산업이든 초창기에는 얼리어답터(초기 구매자)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다가 ‘캐즘(대중화 전 수요가 정체하는 현상)’이라는 구간을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는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자들이 남았다”며 “전기차·배터리도 초격차 기술이나 생산 단가를 낮추는 등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