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본지와 만난 배우 윤여정은 연기 인생 소회를 전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연기를 잘하는 데에 지름길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연습을 많이 하고, 대사를 열심히 외우는 건 타고난 게 없어서 그렇다"라고 밝혔다.
이어 "미모든 뭐든 타고난 배우들이 있다. 근데 그런 건 다 없어질 수 있다"며 "누가 브로드웨이로 가는 길을 물었는데, 거기에 대한 대답이 '연습'이었다. 재주는 잠깐 빛나지만 그걸 유지하려면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고 전했다.
내달 7일 개봉을 앞둔 영화 '도그데이즈'에서 윤여정은 반려견 '완다'와 함께 사는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 역할을 맡았다. 민서는 남편과 사별했고, 아들은 뉴질랜드에 있다. '도그데이즈'는 민서가 완다를 잃어버리면서 겪게 되는 갖가지 사건을 담은 영화다.
윤여정은 실제로 반려견을 키우다가 잃어버린 경험을 전했다. 그는 "예전에 강아지를 키웠는데, 도망가서 찾느라고 1년을 고생했다. 강아지를 키우려면 아이 하나 키우는 거랑 마찬가지"라며 "내 인생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해야 한다. 난 지금 너무 늙고 병들어 내 몸도 건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민서는 유명한 건축가지만, 늘 혼자 밥을 먹는 외로운 노인이다. 유일한 낙은 완다와의 교감뿐. 실제 윤여정의 일상은 어떨까. 그는 "좋은 친구들과 만나서 아무 부담 없이 와인 먹고, 수다 떨 때가 가장 즐겁다"면서도 "늙을수록 외로움을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늘 곁에 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기대하기 때문에 실망도 크다"며 "독립된 개인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난 원래 혼자 있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라 외로울 자신이 있다"고 덧붙였다.
많은 후배가 '롤모델'로 지목한다는 질문에 대해선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롤모델이 필요가 있나 싶다. 사람은 자기 인생을 살아야지. 나하고 똑같은 인생을 사는 게 어딨나. 나는 롤모델이 없었고, 후배들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자기 걸 하면 된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를 통해 한국인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는 미국 아칸소로 이주한 한국가정에서 어린 손주들을 돌보는 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 아카데미 수상으로 연기 경력의 정점을 찍은 그도 여전히 하고 싶은 역할이 남았을까.
윤여정은 "뭘 하고 싶다는 게 별로 없다. 나는 어떤 역할이 왔을 때, 그 역할을 기존과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가를 주로 연구하는 편"이라며 "내가 송혜교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하면 너무 흉하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윤여정은 여전히 멜로를 제일 잘할 것 같은 배우'라는 노희경 작가의 평가에 대해선 "걔는 너무 이상한 애"라며 "어디 가서 제발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며 친근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