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심 중 대체역 편입결정…법원 판단에 영향 못 미쳐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라면 ‘정당사유’
“그 양심은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현역병 입영 의무를 사실상 지키지 않다 병역 기피자로 형사 처벌될 위기에 처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대체 복무 전환을 빌미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특히 법원은 1심부터 3심까지 양심적 병역 거부에서 말하는 양심은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한다고 일관된 판단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2018년 10월 23일 충북지방병무청으로부터 “2018년 11월 20일까지 강원도 양구군에 위치한 2사단 입영부대로 입영하라”는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직접 수령한 A 씨는 입영통지서에 지정된 입영일로부터 3일 이내에 입영해야 함에도 그해 11월 23일까지 입영하지 않아 기소됐다.
1심 선고가 난 뒤 항소심 진행 중이던 2020년 6월 30일부터 대체 복무역 편입 신청이 가능해지자 A 씨는 같은 해 11월 26일 대체역 편입을 신청했으나, 편입신청 결과가 나오기 전인 2021년 5월 21일 항소도 기각 당했다.
1심 법원은 A 씨의 병역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앞서 대학 진학, 국가고시 등을 이유로 병역을 연기했을 뿐 양심적 병역 거부를 피력한 적이 없고, 입영 거부 이전까지 비폭력 관련 비정부기구(NGO) 활동도 한 적이 없어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이유에서다.
1심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는 종교적‧윤리적‧도덕적‧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형성된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를 의미한다”며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라면, 이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체적인 병역법 위반 사건에서 피고인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주장할 경우, 그 양심이 과연 위와 같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 가려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심 역시 징역 1년 6개월이란 형량이 무겁다는 피고인 A 씨 항소를 기각했다. 원심 재판부는 “병역의무 이행이 피고인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스스로 파멸시킬 정도로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면서 “피고인의 입영 거부에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라고 판시했다.
문제는 상고심 계속 중에 대체역심사위원회가 A 씨에 대해 대체역 편입을 결정하면서 불거졌다. A 씨는 양심적 병역 거부라고 주장했는데 대체역 편입 결정이 양심의 진정성에 관한 법원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폭력 및 전쟁에 반대한다는 신념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한 것으로서, 입영 거부에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가 있으므로 병역법 위반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피고인 A 씨 측 상고를 기각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