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날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6시부터 발표 소식을 기다리고자 대기 중이었다. 한데 시카고 증권거래소에서 먼저 비트코인 ETF를 상장 목록에 올렸다. 한 10분 지났을까 SEC에서 비트코인 ETF를 상장한다는 관보를 올렸다. 내용을 확인하려는 데 마주한 건 Error 404 화면이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수정된 관보가 pdf 파일로 게시됐다.
게리 겐슬러 위원장은 비트코인은 여전히 위험하며, 법원의 판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물 ETF를 승인한다는 논지의 입장문을 냈다. 그럼 애초에 재판에서 이기는 게 맞지 않았을까. 말 그대로 우왕좌왕 SEC다.
비슷한 일은 한국에서도 벌어졌다. 승인 결과가 나온 날, 늦은 오후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는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공문이 증권가에 내려왔다. 이후 금융위는 수차례 현물 ETF는 불가하다고 밝혔다. 한데 며칠 뒤, 이를 뒤집는 듯한 대통령실의 입장이 나왔다. 성태윤 정책실장은 “금융위원회에서 ‘이것을 한다, 안한다’라는 특정한 방향성을 갖지 말도록 한 상태”라고 말했다. 총선을 앞두고 여러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린 대통령실이 원점에서 재검토 지시를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 입장에서 국내 증시와 국부 유출 등을 고려하면 비트코인 현물 ETF는 막는 게 맞다. 자본시장법도 고쳐야 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일찍이 유권해석을 내리고 탄탄한 법률적 근거를 만들었다면 이리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비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은 지난해 8월 SEC 심사를 재검토하라는 미국 연방법원의 판단이 나왔을 때부터 자명한 결과였다. 금융당국은 SEC와 소통창구가 있으니 더 잘 알았을 것이다. 부랴부랴 "안돼"라고 말하니 업계와 투자자의 반발도 더 클 수밖에 없다.
지금의 갈팡질팡 행보로는 점점 더 거세지는 가상자산의 파고를 막기 힘들어 보인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금융당국은 가상자산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박상기의 난’으로 불리며 오히려 밈(meme)으로 소비됐다. 게리 겐슬러 위원장은 풍자하는 밈 코인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12월 한국을 찾은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가상자산의 영향력 강화를 우려하며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금융당국이 원하는 목표가 있다면, 더 빠르고 철저하게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