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이어 민주도 위성정당 공식화…21대 총선 재연
'준위성' 표현에도 꼼수 논란 불가피…與 "정략 산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4·10 총선에 적용할 비례대표 선거제를 현행 준연동형제로 유지하고 '통합형 비례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직전 제21대 총선 당시 준연동형 무력화 요인으로 지목된 거대양당의 비례 전문 위성정당 창당 논란이 4년 만에 재점화할 전망이다.
이 대표는 이날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준연동제 안에서 승리의 길을 찾겠다"며 "정권심판과 역사 전진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위성정당 반칙에 대응하면서 연동제의 취지를 살리는 통합형 비례정당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개혁선거대연합'을 구축해 민주당의 승리, 국민의 승리를 이끌어내겠다"고 덧붙였다.
20대 총선까지 도입된 병립형(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 배분) 회귀가 아닌, 민주당 주도로 21대 총선부터 도입된 준연동형(지역구 의석이 정당 득표율에 비해 적으면 모자란 의석 50% 비례대표 배분) 유지로 결정한 것이다.
준연동형은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 문턱을 낮추자는 취지로 21대 총선에서 도입됐다. '다당제·비례제 강화' 등 이 대표의 대선 공약과도 직결된다. 하지만 거대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 제도가 유명무실해진다는 맹점이 있다. 실제 21대 총선에서 준연동형을 반대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위성정당을 만들었고, 민주당도 합세하면서 양당이 전체 비례 47석 중 36석을 휩쓸었다.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도 연동형 유지를 전제로 위성정당을 예고한 상태다. 앞서 민주당 지도부가 선거제 입장 결정권을 이 대표에게 위임한 만큼 당론은 이날 발표대로 확정될 공산이 크다.
원내 제1당으로 선거제 개편 논의의 주도권을 쥔 민주당이 연동형 유지와 비례정당 창당에 방점을 찍으면, 직전 총선에 이어 4년 만에 양당의 위성정당 대결이 또 벌어지게 된다. 다만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으로 확보한 비례 의석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는 반면, 민주당은 대외적으로 '야권 빅텐트'를 명분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군소야당 등에 대한 비례 의석 배분이 불가피하다.
비례 의석에서 손해를 봐 22대 국회에서 1당 지위와 국회의장이 국민의힘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는 민주당의 선거제 입장 정리가 늦어진 배경이다. 때문에 당내에서도 병립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앞서 정청래 최고위원은 "비례를 양보해 당이 과반에 실패하고 1당을 놓치면 용서받을 수 있나"라며 "총선은 여유 부리며 의석을 나누는 자선사업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공약 이행·야권 연대 등 명분론을 내건 당내 준연동형 유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최근 민주당 의석(164석) 절반 규모인 의원 80여명이 '병립형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날(4일) 이 대표를 만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민주당과 우호적인 제3세력까지 힘을 모아 상생의 정치로 나아가달라"며 범진보 연합을 주문한 것과 공약 파기 부담 등이 준연동형 결심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실상 위성정당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꼼수'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통화에서 "병립형으로 돌아가면 친문(친문재인)들의 반발이 극대화할 수 있다. 이미 밖에 이낙연 전 대표 등의 신당도 만들어져 있으니 계파 갈등 요소를 고려해 연동형을 결정한 것"이라며 "결국 저번 총선처럼 양당의 위성정당이 나오게 됐다"고 지적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다당제 연합정치를 취지로 하는 준연동형이 의미가 있으려면 첫째로 거대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 안 되고, 둘째로 비례정당도 엄격한 공천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보완 없이 4년 전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었다"며 "지금 연동형은 군소 야당과 시민사회가 민주당에 비례를 구걸하는 '구걸 제도'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위성정당 추진 책임을 여당 탓으로 돌렸다. 이 대표는 "반칙이 가능하도록 불완전한 입법을 한 점, 위성정당 금지 입법을 못한 점, 위성정당에 준하는 준위성정당을 창당하게 된 점을 사과드린다"며 "(여당과) 같이 칼을 들 수는 없지만 방패라도 들어야 하는 불가피함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광주 현장 최고위를 마치고 이어진 기자들과의 문답에서도 "(비례정당은) 꼼수가 아니라 상대의 반칙에 피할 수 없는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준위성정당' 표현에 대해선 "국민의힘은 임시 정당을 만들어 거기로 비례를 공천하지만, 민주당은 그렇지 않다. 비례 투표를 위한 정당을 만들어 민주당만 지향하는 후보가 아닌 소수정치 세력 후보도 배제되지 않도록 한다"고 했다.
앞서 범야 비례정당을 표방하며 민주당의 합류를 촉구해온 '새진보연합'은 이날 "반윤 개혁 연합정당으로 승리하자는 길과 이 대표의 제안이 같은 방향이라 믿는다"고 환영했다. 진보대연합은 기본소득당, 열린민주당, 사회민주당 등 군소 야당의 총선용 연합정당이다.
다만 위성정당 창당과 공천은 민주당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범야권 진보진영의 가장 큰 비중을 가진 맏형"이라며 "책임을 크게 질 수밖에 없고 그에 상응하는 권한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의 위성정당 참여를 거부한 정의당의 합류 여부도 주목된다. 정의당은 최근 녹색당과 선거 연대체인 '녹색정의당'을 꾸렸다.
제3지대의 합종연횡 움직임도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현재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 이낙연 대표의 새로운미래, 금태섭 대표의 새로운선택 등이 '빅텐트'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비례를 노린 군소정당 난립도 예상된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구속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최근 옥중에서 '정치검찰해체당'을 창당했다.
일찌감치 병립형을 당론으로 정한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결정을 거세게 비판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준연동제는 왜 그렇게 계산해야만 하는지 논리적, 필연적 근거가 없다"며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말을 돌려가며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지만 결론은 준연동제였고 그럴싸하게 포장한 위성정당 '통합형 비례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민주당의 전략의 산물이 탄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