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정원법 개정안, 국회통과” 호소
5년 이상 법조 경력 낮추자…‘배석판사 3년’ 제안
“판사도 인간” 처우 개선 필요…‘법과 원칙’ 강조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3월에 맞춰 논의 준비
조희대(66‧사법연수원 13기) 대법원장이 16일 재판 지연 문제 해결을 위한 시급한 과제로 ‘법관 증원’을 꼽았다. 조 대법원장은 법관에 대한 처우 개선도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전날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취임 이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장기적으로 재판 지연 문제에 대처하려면 법관 증원이 절실하다”며 “(판사 정원법 개정안이) 현 국회 내에 통과되지 않으면 너무 늦어진다”고 강조했다.
결국 인력 충원으로 귀결되는데, 조 대법원장은 해법으로 법관 임용을 위한 최소 경력요건을 업무에 따라 세분화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배석 판사는 3년, 단독 판사 7년, 합의 재판장은 10년 등으로 담당 업무에 맞는 경력 법관을 각각 뽑는 식이다.
현재 판사에 임용되려면 5년 이상의 법조 경력이 필요하다. 이 자격은 내년에는 7년, 2029년까지 10년으로 점차 늘어난다. 법원은 이로 인해 판사 수급이 어려워진다고 호소해 왔으나,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2021년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바 있다.
조 대법원장은 “대륙법계 국가 중 경력법관 제도를 시행하는 곳은 벨기에와 우리나라 두 곳뿐”이라며 “벨기에도 사법 지체와 고령화 등으로 국민의 사법 신뢰가 저하돼 입법적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배석 판사는 3년 경력 요건이 적당하다고 본다”며 “벨기에는 이미 우리와 같은 길을 가다가 실패를 인정하고 돌아왔다. 우리도 합리적인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판사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워라 밸을 무시하는 성인군자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면서 “대우를 늘리거나 해외 연수 기회나 안식년을 주는 등 힘들어도 법원에 남을 요인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조 대법원장은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1심 선고가 이뤄진 ‘사법 행정권 남용’ 의혹에는 “형사상 범죄가 되는지는 재판 사항”이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어쨌든 사태가 생긴 것은 법원이 국민에게 잘못한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취임 후 법원행정처가 다시 비대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행정처 인원이 턱없이 부족해 전임 대법원장 시절부터 필요한 만큼 늘리기로 방침을 정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행정처가 일방적으로 일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상대로 설명해야지, 특정 정치세력에 부탁해서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정책을 ‘법과 원칙’에 따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는 “사소한 문제라도 절대 법과 원칙에서 어긋나지 않게 하는 곳이 법원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만 하고 나가겠다”며 “임기 중에 아무 것도 성사되지 않더라도 국민께 소상히 설명하고 논의해서 가장 합리적인 제도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법의 정치화 문제엔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담담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문을 쓸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이런 사건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만큼 국회의원 선거 무효 등은 고등법원에서 1심을 하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 과정에서 전임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원장 추천제를 전면 도입했던 일에 비판적 인식을 드러냈다.
조 대법원장은 “법원 구성원이 법원장을 추천하는 나라는 한 곳도 없고, 법원조직법도 추천제를 전제하고 있지 않다”며 “입법적으로 하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할 수 없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조 대법원장은 압수‧수색 영장 사전 심문제도에 대해서는 “대법원 규칙으로 할지 입법으로 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3월에 대법관 두 분이 새로 오시면 맞춰서 논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피고인에 따라 법정구속의 기준이 달라 보이는 문제에는 “구체적인 사건을 놓고 말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보겠다”라고 답변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