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78391010109.
언뜻 계좌번호처럼 보이는 이 숫자들의 의미, 알아보실까요? 근 10년간 한국 프로야구(KBO) 한화 이글스의 최종 순위입니다. 3이란 멋진 글자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 보니 그 외의 숫자들의 참담함이 확연하게 느껴지죠.
꼴찌, 꼴찌, 꼴찌에서 두 번째. 이어지는 저 숫자에도 한화는 건재(?)한데요. 그런 와중에도 변함없는 굳건한 애정을 보여주는 보살팬 덕분이죠. 감정의 동요 없는 이런 보살팬에게 ‘행복사’할 격한 소식이 들려왔는데요. 바로 우리의 잘난 괴물 투수, 언제나 흐뭇해지는 그 이름, 류현진이 돌아온다는 속보입니다.
이 기쁜 소식이 들려온 20일, 한화 관계자는 다수 언론을 통해 “분위기가 이전보다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공감대는 형성했다”, “선수 선택을 기다리는 단계다”, “복귀 가능성이 커졌다” 등을 언급하며 팬들을 흥분하게 했죠.
류현진은 지난해 메이저리그 베이스볼(MLB)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이 끝난 뒤 새 팀을 물색했으나 마음을 정하지 못했는데요. 토미존 수술을 하고 지난해 8월 복귀한 류현진은 11경기 3승 3패 평균자책점 3.46으로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죠. 하지만 수술 이력과 적지 않은 나이로 2~3개 MLB 구단으로부터 이전보다는 박한 조건의 계약을 제안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MLB 30개 구단이 올해 스프링캠프 훈련을 시작한 뒤에도 류현진이 새 팀을 찾지 못하자 친정팀 한화로의 복귀 가능성이 대두된 건데요. “설마?”로 시작한 이 기대감은 연이은 보도에 두근대는 설렘으로 바뀌었죠.
관련 보도는 계속됐습니다. 물론 긍정적으로 말이죠. 류현진이 토론토에 보관해둔 짐을 한국에 보냈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절차상 사전 단계인 메이저리그 사무국 신분조회 진행됐다”, “류현진 이름을 새긴 한화 유니폼까지 이미 제작에 들어갔다”, “계약서 사인만 앞두고 있다” 등의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진정, 그가 돌아오고야 말았습니다.
한화 구단 역사상 역대 최고 에이스. KBO 신인상·KBO MVP·KBO 골든글러브를 동시 수상하는 KBO 리그 사상 최초의 루키 시즌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선수. KBO 리그 출신이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선례를 만든 투수. 빅리그 데뷔 서비스타임 10년 차를 달성한 선수. 두 차례 사이영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선수. 한화 팬들에겐 소년가장 그 이상의 그저 뿌듯함으로 자리 잡은 그저 빛. 류현진이 말입니다.
류현진은 2006년 한화에서 데뷔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 8년을 채우지 않고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 시스템을 통해 MLB에 이적했는데요. 한국 복귀는 한화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류현진이 한국으로 복귀한다면 당연히 한화로 돌아올 것이라는 건 야구팬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는데요. 미국으로 떠나기 전 류현진은 “은퇴는 한화에서 할 것”이라고 공표하기도 했고요. 지난 시즌 끝나고 한국에 방문했을 때도 “(한화서 은퇴한다는)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변했었죠.
그런데 예상보다 그날이 빨리 오게 된 건데요. 생각지도 못한 이른 선물에 한화팬들은 이미 흥분상태입니다.
류현진은 2006년 데뷔 후 MLB 진출 전인 2012년까지 ‘꼴찌’ 한화의 유일한 위로가 되어줬는데요. 그 힘든 시기에도 류현진은 190경기(1269이닝) 출전에 98승 52패 1세이브 1238탈삼진 평균자책점 2.80이라는 기록을 써내고야 말았죠.
현재 보도 내용으로 볼 때 계약 수준은 최소 4년에 170억 원 이상으로 보이는데요. 팬들은 모두 ‘저렴한 몸값’이라는 평을 내놨습니다. 류현진이 한화에 벌어 준 돈이 그보다 훨씬 크기 때문인데요.
2012년 LA 다저스는 FA가 아닌 류현진을 데려가는 대신 보상금 성격의 포스팅 금액 2573만7737달러(약 344억4000만 원)를 한화에 지급했습니다. 성적에서도 소년가장이었던 류현진은 떠나는 순간까지 집안에 거액을 안기고 떠난 엄청난 효자가 아닐 수 없었죠.
효자가 남겨준 금액으로 FA 선수들을 대거 잡은 한화는 3위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했지만, 딱 그때뿐이었습니다. 그것 또한 효자가 남긴 거액으로 치른 경기라기엔 매우 부끄러웠죠.
류현진의 한화 복귀 소식은 한화팬뿐 아니라 프로야구 모든 팬에게 엄청난 화제인데요. 류현진은 그야말로 ‘생태계 교란종’이라 불리는 그저 괴물이기 때문이죠. 지하 무덤 깊은 곳의 한화를 멱살 잡고 끌어올리던 에이스 류현진이니깐요. 벌써 한화의 가을야구 직행을 점치는 이들도 늘어났습니다.
돌아온 류현진은 이제 더는 소년 가장이 아닌데요. 한화팬들의 어깨가 절로 펴지는 그 라인. ‘류현진-문동주-김서현-황준서’ 그저 눈이 부신 라인업이 완성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류현진은 소년가장을 넘어 이제 명실상부 ‘가장’으로 자리 잡은 것이 다르다면 다른 것이었죠.
무엇보다 류현진에게 감사한 것은 진짜 은퇴 직전의 몸이 아닌 ‘현역’ 상태로 한국 팬들에게 돌아왔다는 건데요(자의든 타의든 무엇이 중한데). 매번 스토브리그만 되면 들려오는 그 멘트 “한화 올해는 다르다”. 그 가을야구 행복 회로를 돌리는 한화팬들. 진짜로 올해는 다를 것이라는 가스라이팅이 더 격하게 시작되는 순간이죠.
매번 “나는 행복합니다” 목청껏 외치는 한화팬들에게 정말 행복을 안겨줄 진정한 ‘행복산타’가 돌아왔는데요. 올해는 보살팬들도 맘껏 동요하는 광란의 시즌이 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