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늪에서 벗어나 국가 소멸위기를 극복하는 일이 지상 최대과제가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이미 세계 최악 수준에 도달했고, 특히 올해 0.68명까지 수치가 더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는 앞다퉈 저출산 대책을 공약으로 내놨다. 4·10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일과 육아 병행’, 민주당은 ‘출산 장려’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한날한시 공개했다. 2030세대로서 결혼·육아 정책의 최종 이용자(수혜자)가 될 기자가 해당 공약들을 직접 들여다봤다.
‘부모’인 동시에 계속 ‘좋은 동료’로 남을 방법은 없는 걸까. 출산·육아휴직 제도에 있어 휴직장려 및 급여 확대만큼이나 중요한 건, ‘내 빈자리를 채울 동료’에 대한 심리적 부채의식을 없애는 일일 수 있다. 여당이 제시한 ‘육아 동료수당’이 눈에 띄는 이유다.
국민의힘이 저출산 대책으로 제시한 ‘육아 동료수당’은 육아휴직을 쓴 근로자의 업무를 직장동료가 대신 처리할 경우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다. 대체근로자를 바로 구하기 힘든 경우 동료에게 ‘보상 없는’ 추가 업무를 떠넘겨야 한단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일본 대형 보험사 미쓰이스미토모해상화재는 지난해 7월 ‘육아휴직 응원 수당’을 이미 도입했다. 육아휴직을 쓰면 같은 부서 혹은 지사 동료에게 최대 10만 엔(약 90만 원)을 지급하는 식이다. 육아휴직자를 비롯해 그의 동료까지 배려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비슷한 취지로 여당은 ‘유아기 유연·재택 근무 확대’도 내걸었다. 노동시장과 단절되는 육아휴직보다는 일과 출산,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정착시키겠단 의도다. 아이 등하원 등 부모 시간을 보장한 시차근무, 재택근무, 유연근무를 대기업 및 일정 규모 중견기업부터 의무화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겠단 계획이다. 육아기 유연근무 지표를 공시하도록 해 기업의 자발적 정책 참여도 유도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다양한 방식의 근무 형태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현실성 없는 얘기는 아니다.
여야가 공통으로 제시한 공약도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육아휴직을 신청만으로 자동개시하도록 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했다. 육아휴직 자동개시는 근로자가 회사에 육아휴직 신청서를 제출할 때, 사업주의 승인 없이 육아휴직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업주가 육아휴직 신청서를 받고도 명확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휴직 신청을 거부하거나 시기를 미룬다는 문제점이 불거진 데 따른 조치다.
다만 이것이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업무 복귀 후 부당 대우, 승진 누락, 회사와 근로자 간 소통 단절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단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사측의 이유 없는 휴직 거부는 당연히 있어선 안 되는 일이지만, 회사와 피고용인 간 원만한 합의를 통한 휴직제도 이용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이 키우는 일터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제도를 추진했다가 되레 근로 현장에서 출산·육아 휴직자를 더 낙인찍는 꼴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설사 ‘자동개시’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그에 따른 불이익을 금지하는 보완책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인구부 신설’은 거대 양당이 함께 띄운 또 다른 화두다. 국민의힘은 부총리급 ‘인구부’, 민주당은 ‘인구위기대응부’라는 이름의 인구 총괄 부처를 만들겠다고 했다.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인구 대책 사업을 한 곳으로 모으자는 취지다.
그 자체만으로 상징성은 있다. 차기 정부로 누가 집권하든 정부가 인구 문제를 국가 백년대계로 삼겠단 선전포고로도 느껴진다. 다만 ‘부처 신설’은 공약 마련에 있어 매번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신선함’ 측면에서 득점하긴 어려워보인다.
과연 총괄 부처가 없어서 저출산 정책이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긴 힘들다. 비슷한 전례도 있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물관리 일원화’를 명목으로 국토교통부 소관이었던 물관리 업무를 환경부로 이관한 바 있다. 환경부와 국토부가 나눠서 하던 수량, 수질, 재해 관리를 한 개 부처에서 총괄해 맡자는 취지였다. 그 후 몇 년이 지났지만, 국토부 내 특정 조직을 그대로 환경부가 흡수했을 뿐 특별한 정책적 성과를 냈단 평은 듣기가 힘들다.
또 저출산 문제는 주택, 양육, 일자리가 복잡하게 얽키고설켜있다. 신혼부부 주택은 국토부가, 보육 및 양육은 보건복지부가, 일자리는 고용노동부가 담당한다. 타 부처의 인구 관련 업무를 조금씩 떼어 가져온들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현재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5개년 기본계획 수립해 이미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 중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선심성 공약도 일부 보인다. 민주당의 ‘우리아이 자립펀드’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출생(0세)부터 고등학교 졸업(만 18세)까지 정부가 매월 10만원을 자립펀드 계좌에 입금해주는 공약을 제시했다. 펀드 수익 전액은 비과세한다.
단순 계산해봐도 출생아 한 명당 정부는 대략 2280만원(10만원*12개월*19년)에 가까운 돈을 지급하게 된다. 현재 연간 출생아수가 25만명임을 감안하면 막대한 재원 투입이 불가피해보인다.
모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0년 만기 1억원 대출해주고, 자녀수에 따라 원리금을 차등 감면해주는 공약도 있다. 첫째가 태어나면 무이자 전환, 둘째가 출생하면 무이자에 원금 50% 감면, 셋째가 태어나면 원금 전액을 감면하는 방식이다.
경기 둔화 여파로 56조 원이란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가 났고, 올해도 국세가 정부 예측보다 6조 원가량 부족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나라 곳간이 비어가는 상황에 도박판에 판돈 올리듯 막대한 재원 투입이 불가피한 공약을 마구 던지는 것은 무책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