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합진료 금지해 비급여 진료 통제…건강보험 재정 절약 기대
의사들과 정부가 의료 정책을 둘러싸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전면에 부각된 건 의과대학 정원 조율 문제지만, 주목해야 할 쟁점은 따로 있다. 환자는 물론, 건강보험 재정의 공동 주인인 모든 국민이 영향을 받게 될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명과 암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과 함께 ‘혼합진료 금지’ 정책도 비판하고 나섰다.
혼합진료 금지란 환자에게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치료와 비급여 치료를 동시에 행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방안이다. 이달 1일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포함된 내용으로, 불필요한 치료를 줄여 건강보험 재정 낭비를 막는다는 취지다.
해당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급여 진료인 물리치료를 하면서 비급여 진료인 도수치료를 함께 실시할 수 없다. 백내장 수술 시 높은 가격이 책정된 다초점렌즈를 삽입하는 ‘끼워 팔기’ 식의 과잉진료도 원천 차단된다.
의사들은 해당 정책이 의사와 환자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의사가 시도할 수 있는 치료 선택지의 폭을 통제해 최선의 진료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입장문을 통해 “비급여 항목 혼합 진료 금지는 최선의 진료를 제한하는 정책”이라며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2000명 의대 증원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라”라고 촉구했다.
개원가의 반발도 크다. 비급여 진료를 억제하면 병원의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서다. 급여 진료는 일정한 수가와 횟수가 정해져 있지만, 비급여 진료의 비용은 의사가 책정하기 나름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그간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가 일반의 면허만 있으면 진출 가능한 비급여 미용 시술 업계로 유출되는 현상을 막지 못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그간 환자들은 혼합진료로 인해 당장 손해를 볼 것이 없었다. 비싼 비급여 진료를 권유받아도, 부담 없이 동의하고 사후 실손보험금을 청구해 진료비를 보전받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3997만 명에 달한다. 2010년 2080만 명 대비 92% 증가했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과 실손보험사들의 손해는 심각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백내장 수술에 1600억 원, 도수치료 진찰료와 물리치료 등에는 640억 원가량의 건강보험 재정이 지출됐다. 손해보험협회는 도수치료와 백내장 수술을 비롯한 ‘10대 비급여’ 진료에 지급된 실손보험금이 2019년 1조 8825억 원에서 2022년 2조9000억 원으로 급증했다고 집계했다.
일각에서는 혼합진료 금지 정책이 ‘의료민영화’를 위한 전초전이라는 음모론도 제기한다. 비급여 진료만 전문적으로 시행하는 고급 병원이 등장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정부가 실손보험사들의 민원을 해결해주기 위해 보험 가입자들에게 보장된 혜택을 강제로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국민에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과잉진료를 차단해 건강보험 재정 낭비를 줄이면, 절약분으로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실손보험 가입 필요성이 낮아지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정부가 제시한 정책은 백내장 수술과 도수치료 등 극히 일부 비중증 과잉 비급여 분야에 적용될 뿐, 모든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혼합진료 금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작업과 병행하는 것임을 간과하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민간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혼합진료 금지로 인해 보장이 줄어든 만큼의 금액을 환급하는 등 향후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후속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