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칙 대응이 불법파업 잠재워
의사투쟁 ‘기득권지키기’ 명분 없어
엄정대응하되 대화의 문 얼어놓길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전공의 집단 사직에 이어 인턴의 임용 포기까지 겹치면서 의료 대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의사면허 취소 등 강력 대응을 강조하지만 의료계의 저항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않는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 파업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환자 곁을 지켜야 할 의사들이 직업윤리를 내팽긴 채 제 밥그릇 지키기 투쟁에 나선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비대면 진료 활성화 등 역대 정부들이 추진하던 정책들은 대부분 무산되었다. 생명을 담보로 벌이는 의사들 파업의 파괴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도 가끔씩 대규모 총파업을 벌이지만 파급효과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정부는 면허정지 등의 ‘엄포’를 놓지만 결국 엄포로 끝나기에 의사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이번에도 의사들은 정부의 의대증원 방침이 발표되자 파업돌입과 함께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노환규 전 대한의협회장), “면허 불이익은 의사에 대한 정면 도전”(김택우 의협비대위원장) 같은 공권력을 무시하는 발표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이 정부는 양아치 정부”, “감히 정부가 의사들의 뜻을 거스를수 있느냐”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권 카르텔로 뭉친 고수입 집단들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대정부 공격인 셈이다. 오죽했으면 파업을 밥먹듯 벌여온 민주노총이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국민 생명을 내팽개치는 비윤리적 행위”라고 비판했을까.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제재할 방법은 없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1984년 탄광노조를 진압했던 방식이 어느정도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 의사단체와 영국 탄광노조 모두 공권력을 무력화시킬 만큼의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탄광노조의 파업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생존권 투쟁이었던 데 반해 한국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높은 수익구조를 빼앗기지 않기위한 밥그릇 투쟁이다.
당시 탄광노조는 세계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고 있는 데다 생존권 투쟁이었던 만큼 파업강도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탄광노조는 이전에도 정부의 산업합리화 정책을 총파업을 통해 무력화시킨 경험이 있던 터였다. 그런데 또다시 영국 정부가 2만 명이란 대규모 해고 방침을 발표하자 “정부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겠다”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탄광노조의 파업이 장기간 극렬하게 지속된 것도 생존권 문제였기 때문이다.
당시 불패신화를 자랑하던 탄광노조는 초반엔 승리를 자신했다. 현재 공권력을 무시하는 한국 의사단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파업이 지속되면서 경제적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도 대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 법과 원칙으로 대응했다. 공권력을 통한 원칙적 대응은 파업 동력을 무력화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철저한 사전준비도 노조를 약화시키는 데 한몫했다. 수개월치의 석탄을 미리 비축, 석탄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함으로써 파업으로 인한 타격을 최소화한 것이다. 탄광노조는 결국 투쟁 1년 만에 백기투항하고 말았다.
영국 노동운동을 안정시킨 대처리즘은 뛰어난 협상 기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민경제라는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했을 뿐이다. 지금 의사들 파업에 직면한 윤석열 정부가 눈여겨볼 대목이다. “의사는 결국 구제된다”는 불패 신화만 믿고 벌이는 집단행동에 대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이다.
더구나 의대증원은 급속한 고령화에 대비한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건강권 확보를 위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국민여론도 의대증원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다만 증원 숫자와 방법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선 법과 원칙에 따라 강력 대응하되 증원 방식에 대해선 좀 더 열린 자세를 통해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