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영의 금융TMI] "23년간 제자리였던 예금자 보호한도, 왜·어떻게 올려야 하나요"

입력 2024-03-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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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뉴스를 접해 보면 궁금증이 생기기 일쑤죠. 당장 오늘 일어난 일을 설명하기에도 바빠 맥락과 배경까지 꼼꼼히 짚어주는 뉴스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과도해도 정보가 경쟁력인 시대입니다. [금융TMI]에서는 금융 정책이나 용어, 돈의 흐름, 히스토리 등을 쉽게 설명해 전달하고자 합니다. 따분하고 어렵기만 한 금융 기사를 친절한 ‘TMI(Too Much Information)’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미지투데이)

'23년간 바뀌지 않았지만, 바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것.' 무엇에 대한 설명일까요. 바로 예금자보호한도입니다.

국내 예금자보호한도가 5000만 원으로 유지된 지 23년째입니다. 우리나라는 '예금자보호법'을 제정해 예금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금융회사가 영업정지나 파산으로 고객의 예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되면 예금보험공사가 금융회사로부터 보험료를 받아 적립한 기금으로 대신 지급해 고객 재산을 안전히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보호한도는 2001년 금융회사별 예금자 1인당 원금과 이자를 합한 값인 5000만 원으로 정해졌고 23년이 지난 올해까지도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의 보호한도도 각 관계 법률에 따른 자체 기금에 의해 5000만 원까지 보호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금융시장이 몇 차례 불안에 빠지면서 이 한도가 상향돼야 한다는 주장이 활발히 제기됐습니다. 대표적인 금융시장 불안요인으로는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사태와 7월 새마을금고 대규모 예금이탈(뱅크런) 사태가 꼽힙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지난해 10월 향후 시장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금융권 논의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최근 국민의힘이 예금자보호한도를 현행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상향할 것을 총선공약으로 발표하면서 한도 상향 주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앞서 1월 30일 국민의힘은 '서민ㆍ소상공인 새로 희망' 공약을 발표하며 "지난 20여 년간 1인당 국민소득이 3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예금자보호한도는 선진국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을 통해 금융기관 간 금리 경쟁을 촉진하고, 예·적금의 금리가 높아지게 되면 기존 소액 예금자의 자산 증식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내다봤습니다.

여당 측이 '민생 공약'이라고 내세운 한도 상향, 금융당국은 왜 지지부진한 태도를 보였던 것일까요. 우선 한도를 높이면 그 혜택을 받는 이들은 소수에 그칩니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5000만 원 보호한도 내에 있는 은행권 예금자의 비율은 전체의 97.8%에 달합니다. 보호한도를 5000만 원 초과로 높였을 때 그 혜택은 2.2%의 고액 예금자에게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도를 상향하면 예보에서 금융회사에 부과하는 예금보험료율이 오를 수밖에 없는데, 보험료율 인상으로 인해 커진 금융사의 부담은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습니다.

여당 측이 공약에서 '긍정적 영향'이라고 강조한 '고금리 경쟁'도 금융당국이 우려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2022년 말 저축은행은 고금리 예·적금 상품 특판경쟁을 벌였는데, 이 여파로 지난해 저축은행업권의 수익성, 재무건전성 등이 악화됐습니다. 지나친 수신금리 인상 경쟁은 금융사의 자금 조달 비용을 높여 결국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민생에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고금리 경쟁을 부추길 수 있는 예금자 보호한도 상향에 대해 금융당국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은행에서 저축은행으로의 자금이동이 대거 발생해 리스크가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최대 예금보호한도가 은행과 똑같이 높아진다면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저축은행의 예금으로 고객과 자금이 몰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금이 저축은행으로 몰리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 고위험 분야에 대한 투자 증대로 이어질 수 있어 문제가 됩니다. 실제로 2005년 저축은행 간 인수합병 허용, 우량 저축은행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 확대 등으로 저축은행들이 안정적인 예금 수취가 가능해지자 이를 기반으로 거액의 PF 대출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을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PF 대출 부실화에 따라 저축은행 업권이 적자 전환하고 건전성이 악화했습니다. 금융당국이 한도 상향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는 배경입니다.

(자료제공=국회입법조사처)

그런데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경제규모의 증가, 다른 국가들의 보호한도 수준 등을 따질 때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한도는 상향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GDP 대비 은행업권의 보호한도 비율은 약 1.2배로, 미국(3.1배), 영국(2.2배), 일본(2.1배) 등 해외 주요국에 비해 낮은 수준입니다.

정혜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23년간 변동 없는 예금자보호한도, 차등 상향 필요' 보고서를 통해 "일각에서는 소수 예금자만의 편익 증가를 우려하지만 대부분 예금자들이 보호한도 내에서 여러 예금을 기관에 분산예치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보호한도 상향은 금융소비자 편익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업권별 차등적 상향해야…"부실 가능성 큰 비은행예금취급기관 한도 유지ㆍ은행 상향"

보고서는 업권별 차등 상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은행의 보호한도는 기존 5000만 원보다 높이되,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의 보호한도는 유지하는 방향입니다.

여신심사능력 차이에 따른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위험수준을 고려한 조치입니다. 은행보다 저축은행, 상호금융의 여신심사, 리스크 관리 능력이 부족하기에 부실 가능성이 큰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한도를 은행과 동등하게 두면, 한정된 금융재원이 엄격한 심사 없이 비효율적인 영역으로 과다 배분돼 경제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입니다.

정 조사관은 "이미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업권별 특성을 반영해 차등적 보호한도를 적용하고 있다"라며 "같은 수준의 보호한도는 저축은행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으로의 자금이동, 고위험 투자 확대 및 부실 발생, 이에 따른 예금보험료율 인상, 다른 업권에의 부담 전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어 그는 "은행의 보호한도는 상향하되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의 보호한도는 유지하는 등 차등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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