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파견직 고용조건, 유사직종 없으면 법원이 결정”
“원칙적으로 근로자들에게 증명 책임 있다”
도공 책임여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 ‘잘못’
한국도로공사 통행료 수납원들이 제기한 수백억 원대 임금 소송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이에 따라 수납원들에 대한 도로공사의 고용 의무를 인정, 직접 고용된 근로자와 같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본 원심 판결은 다시 판단을 받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2일 고속도로 통행료 수납원 596명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이 사건에서는 회사가 지급할 돈의 규모를 어떤 기준으로 정할지가 쟁점이 됐는데,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에 따르면 파견 근로자를 직접 고용할 때 사업주가 고용 중인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 조건을 적용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동종‧유사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는 뚜렷한 규정이 없어 문제가 됐다.
대법원은 “파견법상 직접고용 의무가 있는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정할 때 직장 내 동종‧유사 업무를 하는 근로자가 없을 경우 법원이 적절한 근로조건을 선택해 적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소송을 낸 원고들은 도로공사와 용역 계약을 맺은 외주업체에 소속돼 통행료 수납 업무를 수행한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앞서 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2019년 8월 대법원에서 대부분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았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근로자 지위가 인정된 파견근로자는 임금에 준하는 규모의 손해배상을 회사에 청구할 수 있다.
이에 수납원들은 공사를 상대로 다시 기준임금과 복리후생비에 준하는 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내면서, 도로공사의 경비원‧청소원‧식당조리원 등 조무원 직종이 적용받는 ‘현장직 직원 관리예규’를 기준으로 임금을 청구했다.
하급심 법원은 수납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관리예규를 기준으로 지급액을 정했다. 1심에서는 총 313억 원이, 2심에서는 총 215억 원이 각각 인정됐다.
대법원은 관리예규를 기준으로 수납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면서도 “수납원들이 파업 참여, 결근, 외주사업체 사직 등 실제로 근로를 제공하지 않은 기간의 경우, 그것이 공사의 책임인지 여부는 원칙적으로 근로자들에게 증명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에 항소심 판결 일부는 공사의 책임 여부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수납원들의 청구를 받아들인 잘못이 있다며 파기하고 다시 재판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사업주가 파견 관계를 부인하는 등으로 인해 자치적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지 못한 경우에는 근로의 내용과 가치, 근로조건 체계, 공평의 관념, 다른 직접 고용 파견 근로자에게 적용한 근로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법원이 합리적인 근로 조건을 적용할 수 있다”고 설시했다.
이날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도로공사의 상황실 보조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들이 낸 소송에 대해서도 유사한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근무 형태가 다른 상황실 보조원들에게 조무원과 같은 근로조건을 적용하는 것이 맞지 않는다며,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