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돌아온 후 대형마트에 갔다. 사과 5~6개입에 2만 원 가까이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보고, 장보기 앱을 눌렀다. 장보기 앱에서는 5~7개입에 2만7000원 정도는 내야 한다고 떴다. ‘여수에서 사과 살걸 그랬나’ 후회가 물 밀듯이 밀려왔다.
먹거리 물가가 너무 비싸 장보기 엄두가 안 난다는 한숨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금(金)사과는 식료품 중에 ‘사치품’에 속한다. 올해 1~2월 과일을 포함한 식료품 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6.7% 올랐다. 지난해 전국 기준으로 상용 월평균 임금상승률은 3.4%(통계청)로 집계됐다. 식료품 물가상승률의 절반 수준이다. 정부는 ‘물가 2%대 조기 달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3∼4월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에 역대 최대 수준인 60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시장 현장을 찾아 물가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를 수차례 전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얘기는 입버릇처럼 나온다.
물가를 바라보는 정부와 소비자들의 시선에 시각차가 감지될 때가 있다. 2월 소비자물가가 발표됐을 때 그 격차는 더 두드러졌다. 2월 소비자물가는 3.1%(전년동기대비)를 기록했다. 1월에 2%대(2.8%)에서 다시 3%대로 오른 것이다. 식료품 물가상승률은 7.3%, 생활물가지수는 3.7%, 신선식품지수는 무려 20.0% 각각 올랐다.
복수의 당국 관계자에게 2월의 각종 물가 수치를 제시하며 ‘물가안정기는 진입했다고 볼 수 있는지’ 물었다. 공통적으로 “식료품 물가가 오르긴 했지만…”이란 전제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타깃으로 보는 수치는 소비자물가니깐 2월에 3%대로 올랐다고 해도 안정기에 진입한 걸로 볼 수도 있겠다”라고 했다. 체감물가를 설명하는 보조지표인 생활물가지수, 신선식품지수가 아무리 올라도 소비자물가만 2%대로 떨어지면 만사형통이라는 건가.
올해 1월 한국은행 통화정책국에서 발간한 ‘물가안정기로의 전환 사례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를 되짚어본다. 물가안정기 진입에 실패한 사례를 분석한 내용이었다. “(물가안정기 진입 실패 사례는) 가격조정 모멘텀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큰 폭의 인플레이션 충격 이후 기술적으로 따라오는 기저효과를 물가안정기로의 진입으로 오인하면서 정책당국이 성급하게 완화기조로 전환한 사례가 다수였다”고 지적했다. 허구한 날 사과 타령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가 있다면 소득과 생계유지에 큰 어려움이 없는 편에 속할 가능성이 크다. 일확천금의 금융소득 없이, 고소득에 속하지 않는 근로소득으로만 생활하는 이들에게 물가는 생계와 직결된다.
정부에서 재정을 풀고, 공공요금 인상도 늦추면서 ‘소비자물가’ 지표가 2%대로 내려갔다고 치자. 식료품, 생활물가, 신선식품이 여전히 고공행진이라면 정부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 소비자물가가 2%대 진입했다고 박수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