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택 감독 "세월호 참사 터진 10년 전보다 더 암울한 시대"
"세월호 10주기 맞아 영화 보면서 함께 위로하는 시간 되기를"
지난달 29일 본지와 만난 문종택 감독은 영화 '바람의 세월'을 찍은 소회를 전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팽목항에 파도가 칠 때, 바람이 불면 파도의 포말이 카메라 렌즈를 하얗게 덮는다. 나는 그게 아이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그 소리를 관객들이 들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영화 '바람의 세월'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 고(故)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참사 이후 10년간 여러 세월호 소재 영화들이 만들어졌지만, 유가족이 직접 만든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미디어 활동가 김환태 감독의 도움을 받아 이번 영화를 완성했다.
이날 함께 자리한 김 감독은 "제목이 '바람의 세월'이라 바람 소리를 최대한 넣고 싶었다. 거친 바람 소리의 의미와 감정이 이 영화에 담기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이 거칠더라도 영화 곳곳에 있다"라며 "관객들이 그런 부분을 발견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바람의 세월'은 영화의 총괄 프로듀서인 김일란 씨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10년의 세월을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면 좋을지 논의하던 과정에 2020년 10월, 김 감독이 합류하면서 영화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10년의 세월, 3654일, 5000여 개의 영상. 문 감독은 "물리적인 용량이 50TB인데, 내 마음속에는 500TB 이상이라고 해도 성이 다 안 찬다. 내 눈과 귀로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었던 것들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많다"라며 "영상을 선별하는 데만 3개월 정도가 걸렸다"고 말했다.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어땠을까. 문 감독은 "아직 세월호와 관련된 것들을 보면서 '잘됐다', '좋다' 이런 소리를 못한다. 다만 부모님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참 한창때였네'라는 말을 농담으로 주고받기는 했다"라며 옅은 웃음을 보였다.
이어 "시사회 때,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토닥해준 부모님이 있었다. 우리의 살붙이가 영화에 있는 느낌이다. 가족분들이 이 영화를 잘 봐주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10년이 흘렀다. 그간 유가족들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의 결실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정말 안전한 사회가 됐나. 문 감독은 "2014년보다 암울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한숨을 내비쳤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하는 세상을 만들지 못한 죗값으로 이태원 참사를 맞이한 것 같다. 암울한 시대에 일조한 느낌"이라며 "정치권과 언론이 가장 먼저 변해야 하는데, 국민의 생각에 반의반도 못 쫓아오고 있다. 그나마 우리 국민이 깨어 있어서 내가 안 죽고 사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월호 진상규명과 관련해 새로운 주장과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월호 선사 임원이 국정원 협조자로 활동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세월호 참사 10주기 위원회는 진상 규명을 위한 상설 독립 조사 기구를 꾸릴 수 있는 법 제정을 호소했다.
김 감독은 "10년 전과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똑같은 일들이 반복하고 있다. 지금 정부에서 거꾸로 간 것도 많다"라며 "전 해수부 장관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방해 혐의로 기소됐지만, 총선에 나오고 있다. 문 감독님이 말하는 암울하다는 지점들이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세월호 10주기 맞아 영화를 보면서 유가족과 관객들이 함께 위로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