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까지 조사한 여론조사는 공표·보도 가능…선관위도 "금지 기간 폐지해야"
4·10 총선 관련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 및 보도가 사전투표 하루 전인 4일부터 본 투표일인 10일 오후 6시까지 금지된다. 투표일 전까지 변화하는 민심을 파악할 수 없는 이른바 '깜깜이 선거(블랙아웃)'에 접어드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불공정하거나 부정확한 여론조사가 공표돼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경우 이를 반박하고 시정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한 것이지만, 일각에서는 유권자의 '알 권리'를 제한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선거일 전 6일인 4월 4일부터 선거일인 4월 10일 오후 6시까지 선거에 관해 정당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의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해 보도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기간 이전인 3일까지 조사한 여론조사는 공표·보도할 수 있으며, 공표된 결과를 인용하거나 금지 기간 전에 조사한 것임을 명시해 결과를 공표·보도하는 행위는 가능하다.
선관위는 "선거일에 임박해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불공정하거나 부정확한 여론조사가 공표돼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경우 이를 반박하고 시정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론조사 결과가 투표자로 하여금 승산이 있는 후보를 지지하게 되거나(밴드왜건 효과) 열세자의 편을 들게 하는(언더독 효과) 등 선거에 영향을 미쳐 국민들의 진의를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편,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유권자의 '알 권리'를 제약할 수 있고,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되지 않는 기간에 여론조사와 관련한 가짜뉴스나 자의적으로 판세를 전망하는 등 부작용이 있다는 측면에서다.
실제로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여론조사 금지 기간 자체가 없다. 스페인과 이스라엘의 경우엔 5일(이하 선거일 포함), 프랑스는 2일, 노르웨이와 캐나다는 각각 하루를 금지 기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1996년 7일의 공표금지 기간을 뒀지만, 이후 언론환경의 변화를 반영해 선거 전날부터 당일까지 이틀로 줄였다. 캐나다는 본래 선거일 전 3일간 공표를 금지했지만, 이후 선거법을 개정해 현재는 당일에만 금지하고 있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들은 대체로 금지 기간을 두지 않거나 금지 기간이 있더라도 최소화하거나 과거에 비해 줄이는 경향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의원은 지난해 2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을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법안에서 "선거일 전 6일부터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는 것은 선거에서의 기회 균등과 공정성을 침해한다고 명백하게 볼 수 없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라며 "과거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함에 따라 잘못된 정보로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으므로 과잉금지원칙에 따라 현행법을 개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선관위에서도 지난해 1월 금지 기간을 개정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선관위는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여론조사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공표·보도 금지 기간을 규정하기보다 이를 폐지해 유권자의 판단·선택을 돕는 참고자료로서의 유용성을 인정하려는 것"이라며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사전투표 기간 개시일부터 선거일 투표 마감 시각까지는 사전투표를 한 사람에 대한 여론조사 공표·보도를 계속 금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여론조사 결과의 금지 기간이 완전히 폐지되면 사전투표 실시 기간에도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부정확한 여론조사 결과의 보도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문위원은 박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여론조사 공표 금지를 폐지한다면 사전투표 실시 기간에도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돼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여론조사 시 사전투표를 행한 유권자의 의사를 반영한 당선인 예상 결과가 공표될 수 있다는 점, 선거일이 임박한 시점에 여론조사가 집중적으로 실시돼 부정확한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보도 사례가 다수 발생할 우려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선관위 또한 해당 법안과 관련해 "사전투표 이후 사전투표를 한 사람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이들 표본을 특정하는 방법으로 정당 지지도나 당선인 예상 결과를 공표·보도하게 되면 사실상 사전투표 출구 조사를 선거일 전에 공표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날 우려가 있으므로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