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법인회생사건 통계조사 결과보고서…최근 1년간 법인 회생·파산 접수 급증세
작년 법인회생 통계조사 결과
전체 접수 1054건…전년比 52%↑
부산 332%‧광주 124% 늘어나고
대구는 법인파산 접수 349% 폭증
회생신청 업종별 들여다보니…
도소매‧전자‧기계‧금속제조 ‘타격’
종사자 많은 제조업 고용 직격탄
부채비율 가장 높은 건설업 ‘뇌관’
부산·광주·대구광역시 등 지역 거점 도시에서 기업 회생·파산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업종별로는 도소매·제조·건설업 비중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29일 본지가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입수한 ‘법인회생사건 통계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2023년 3월~2024년 2월) 전체 법인회생 접수 건수는 1054건에 달했다. 전년 동기(694건) 대비 51.9%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서울회생법원이 329건으로 가장 많았고 수원회생법원이 214건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부산과 광주에 기반을 둔 법인의 회생 신청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이다. 이 기간 부산회생법원에 접수된 법인회생 사건은 108건이었다. 전년도 같은 기간 25건에 불과했던 데 비하면 증가율만 332%에 이른다. 광주지방법원에 접수된 회생 사건도 56건으로, 전년(25건) 보다 124% 늘어나 증가율이 두 번째로 높았다.
재기를 도모하는 회생 대신에 사업을 완전히 종료하는 파산을 택하는 법인 역시 급증세다. 회생과 달리 파산은 사업을 끝내겠다는 신청인만큼 회생법원조차 이렇다 할 지원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같은 기간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파산 사건은 총 1739건으로 전년(1074건) 보다 61.9% 늘었다. 소재 기업이 많은 서울·수원회생법원이 각각 712건과 333건으로 절대적으로 많았지만 전년 대비 법인파산 접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지역은 대구였다. 대구지역 파산 접수는 총 220건으로 전년 동기(49건)에 비해 무려 349% 폭증했다. 대구는 염색업이나 직물 제조업 등 오래된 섬유산업 업체가 다수 분포한 지방이다.
회생을 신청한 법인을 업종별로 나눠보면 위기에 놓인 산업군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서울회생법원이 한국산업 표준분류표에 따라 법인회생 사건 업종을 분류해 보니 ‘도·소매’가 42건으로 가장 많았다.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금으로 각종 재화나 농수산물 등을 판매하는 성격을 지닌 업종으로 서민 경제가 타격을 입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어 ‘전자·기계·금속제조’(41건)와 ‘건설공사’(36건)가 법인회생을 많이 신청한 업종으로 꼽혔으며 의류제조(26건), 부동산(22건) 순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산업 핵심인 제조업과 우리 경제의 중요한 한축을 이루는 부동산 관련 기업이 속속 쓰러지고 있다는 뜻이다.
전자·기계·금속제조업과 건설공사업은 1개 업체당 평균 종사자 수가 각각 65명, 30명으로 분석대상 업종 중 가장 많아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황성민 서울회생법원 공보판사는 “법인회생을 신청하는 경우 고물가·고금리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며 “건설사의 경우 임금이나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다는 게 주요 요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조업체의 경우 시설 투자를 위해 은행에서 자금을 빌리는 경우가 많은데 예상과 다르게 고금리 국면에 놓이자 금융 이자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고 분석했다.
법조계에서는 건설사의 법인회생 절차를 우려스럽게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타 업종에 비해 자산은 적고 부채 비율은 높은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회생법원이 최근 1년간 법인회생을 신청한 해당 업종의 평균 부채 금액을 산출해 보니 건설공사업 부채액은 633억4400만 원으로 △도·소매업(56억4100만 원) △전자·기계·금속제조업(474억2500만 원) 보다 크게 많았다.
공장 및 기계 등 처분할 수 있는 자산을 보유한 ‘전자·기계·금속제조업’은 평균 자산(245억300만 원)이 높아 그나마 채권을 변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건설사는 평균 자산(100억6300만 원)이 적고 업체별로 차별화된 기술도 부족한 현실에서 부동산 경기 흐름까지 강하게 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1년간 법인회생을 신청한 건설공사업의 경우 자산 대비 부채 규모를 의미하는 부채 비율이 629.5%를 기록해 전 업종 가운데 가장 높았다. 도·소매업(262.4%), 전자·기계·금속제조업(193.6%)과 견줘보면 확연히 구분된다.
회생절차에 돌입한 건설사의 기업 간 인수·합병(M&A) 작업이 쉽지 않은 경향을 보이는 이유다. 부실 건설사가 타개책을 찾지 못한 채 줄도산할 경우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
회생법원 주도 하에 M&A는 전부 30건이 진행됐는데, 계약을 체결한 사건은 9건에 그쳤다. 이 중 8건이 스토킹 호스로 인수자를 찾았다. 스토킹 호스란 기업 매각 시 우선협상 대상자를 먼저 확정한 후 경쟁 입찰을 거쳐 최종 인수자를 선정하는 M&A 방식을 일컫는다.
법무법인(유한) 지평에서 도산·구조조정팀장을 맡고 있는 권순철 변호사는 “건설사의 경우 회생 절차에 돌입하면 관급 공사 수주가 어려워진다”고 문제점을 짚었다. 권 변호사는 “법인회생을 신청하는 곳은 민간 공사를 많이 수주하는 경쟁력 있는 건설사보다는 지역 기반의 작은 건설업체가 많고, 이들의 경우 관급 수주를 못하면 사업이 더 어려워지므로 회생을 꺼리게 된다”라고 꼬집었다.
◇ 법조팀 = 박꽃 기자 pgot@‧박일경 기자 ekpark@‧김이현 기자 spes@‧전아현 기자 ca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