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 날씨 속에서 나들이 나가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콘서트나 페스티벌 같은 공연도 활발하게 개최되면서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있죠. 그런데 문화생활을 주저하게 하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암표'입니다.
티켓 원가에 '프리미엄'(플미)을 붙여 파는 암표는 인기 공연에만 한정된 듯했습니다. 특히 K팝 시장에서 암표가 성행했는데요. 모든 이들이 암표를 문제라고 인식하긴 했지만, '어물쩍' 넘어가는 분위기가 흘렀습니다. 자리는 한정돼 있고, 손이 빠른 이들을 이기는 것보다 웃돈을 얹어 티켓을 거래하는 게 쉬웠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마음'과 관련한 비즈니스이기에, 웃돈을 주고서라도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을 완벽히 제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정설이었죠.
최근에는 암표가 대학 축제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대학 축제에서 공연하는 유명 가수들을 보기 위해 재학생의 신분증, 학생증을 돈 주고 사는 행위도 늘어나는 실정인데요. 암표, 왜 근절하지 못하는 걸까요?
암표가 당장 최근의 일은 아닙니다. 암표 문제가 불거진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요. 인기 공연일수록 가격은 천정부지죠.
지난해 열린 그룹 블랙핑크의 대만 콘서트 티켓은 암표 최고가가 정가 약 45배인 1700만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방탄소년단(BTS)의 202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콘서트는 바로 앞에서 무대를 즐길 수 있는 '로열석'(VVIP) 암표 가격이 1800만 원까지 기록해 경악을 자아냈죠.
가수 임영웅도 암표로 곤욕을 치르는 인기 가수 중 한 명입니다. 임영웅의 전국 투어 콘서트 VIP석 가격은 16만5000원이었지만, 온라인상에는 정가의 30배가 넘는 500만~550만 원의 암표가 올라와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암표가 대중가요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올해 1월 열린 피아니스트 임윤찬 연주회는 R석 정가가 15만 원이었지만,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엔 10배에 달하는 150만 원짜리 암표가 등장했죠.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는 전국 각지 시청자 1000명을 대상으로 최종회를 함께 보는 단체 관람 이벤트를 성료했는데요. 윤종호 감독과 김태엽 감독, 이시은 작가, 배우 변우석, 김혜윤, 송건희, 이승협, 문시온, 양혁, 성병숙, 정영주, 송지호, 이일준이 무대인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벤트성 자리였던 만큼 티켓 가격은 1000원이었지만, 적게는 5만 원부터 30만 원에 달하는 암표 거래가 이어졌습니다.
앞서 송건희는 프라이빗 메시지 플랫폼 버블을 통해 '암표가 성행하고 있다'는 팬들의 토로에 "이건 아니지"라고 당혹감을 드러내기도 했는데요. 그는 "1000원이었는데 무슨 소리냐. 내가 화나는데"라며 "'플미' 붙은 것 혹시라도 사지 말아라",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다. 절대 사지 말아라. 결국 그 사람들 취소해야 한다"고 팬들에게 거듭 당부했죠.
특히 드라마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변우석의 팬미팅 티켓 원가는 7만7000원이었지만, 티켓 양도를 전문으로 하는 한 사이트에는 최고가가 500만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지난해 열린 '2023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도 암표 거래가 속출했습니다. 롤드컵 우승에 도전하는 인기 구단과 축하 공연에 나서는 가수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소식에 온라인상에는 수백만 원대에 달하는 암표가 나왔습니다. 원가 기준 가장 비싼 좌석은 24만 원가량이었지만, 암표는 10배가 훌쩍 넘은 건데요. 심지어는 1000만 원이 넘는 가격에도 티켓을 사겠다는 게시글이 올라왔습니다.
처음 한국에서 열린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개막전, 서울시리즈 관람 티켓의 암표 가격 역시 400만 원대에 올라와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 자리는 오타니 쇼헤이 소속팀인 LA 다저스의 더그아웃과 가까운 1층 테이블석이었죠.
암표 피해는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공식 신고된 공연 암표 건수는 2020년 359건에서 2022년 4244건으로 2년 새 무려 11.8배 증가했습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가 지난해 공연 티켓 예매 경험이 있는 전국 남녀 57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19~29세 32.8%가 "암표 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했는데요. 30~39세, 40~49세는 각각 25%가 암표 구매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죠.
대학가도 기승을 부리는 암표로 매년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대학 축제의 하이라이트로는 가수들의 공연이 꼽힙니다. 인기 가수가 무대를 꾸미면 무대를 보려는 재학생들과 외부인으로 대학교가 가득 차곤 하죠.
대학 축제 기획단은 재학생 참여를 보장하고 혼잡에 따른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재학생 우선 입장 방침'을 내세웁니다. 학교 구성원에 한해 공연을 볼 수 있게 하거나, 무대와 가까운 '명당 자리'는 학교 구성원 전용으로 마련하는 방식으로요.
연세대 축제 '아카라카'는 개교 139주년 행사를 맞아 실물 티켓을 모바일 티켓으로 대체했습니다. 수년간 암표 문제 등으로 몸살을 앓은 뒤 강구한 방안이었는데요. 연세대 응원단은 "행사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티켓팅에 참여한 뒤 다른 학우들에게 상식 밖의 금액을 제시하고 판매하는 행위가 점차 확대되면서 이를 방지하고자 한 것"이라고 제도 도입 배경을 밝혔습니다.
경희대는 라이즈 등 유명 아이돌 그룹 출연에 노천극장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을 제한했고, 재학생 전용 구역에 입장하기 위해선 학생증과 신분증을 제시한 뒤 도장을 찍어야 했습니다. 외부인들은 '프리존'에만 들어갈 수 있었죠. 한양대도 재학생 전용 구역인 '한양존'과 외부인 구역인 '프렌드존'을 만들어 확인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재학생 인증 절차가 강화되자, 암표는 더 치밀하게 발전(?)했습니다. 축제 입장 티켓이나 재학생 인증 수단인 신분증, 학생증 등을 돈 주고 파는 것에서 나아가, 재학생이 입장을 함께 하는 등 입장을 도와주는 행위에 '입장 도움비' 같은 이름으로 추가금이 붙기 시작한 겁니다.
콘서트 암표를 사고팔 때도 '아옮비'(아이디 옮김 비용) 언급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옮'은 판매하는 사람이 구매하려는 사람의 아이디로 티켓을 옮겨주는 것을 뜻하는데요. 판매자가 티켓을 취소하는 순간 구매자의 계정으로 취소된 티켓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암표 거래를 뿌리 뽑지 못하는 건 '개인과 개인 간의 거래'를 딱히 제재할 수 없다는 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암표 문제를 막겠다며 3월 22일부턴 암표 판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 공연법'이 시행됐는데, 온라인상 매크로를 이용한 입장권 판매자를 처벌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개정 공연법은 매크로를 이용하지 않고 입장권을 구매해 온라인상에서 판매한 사람도 '부정판매'로 규정하긴 했지만, 특별한 처벌 조항을 두진 않았습니다. 즉 매크로 프로그램만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냥 인터넷에서 입장권을 구매해 얼마를 붙여 판매하든 법적 처벌 근거도 없고, 실제로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티켓 거래가 오고 가는 중고거래 플랫폼, 티켓 거래 사이트를 규제할 방법도 없습니다. 현행법대로라면 티켓 거래가 가능한 플랫폼은 판매자가 몇 배를 부풀려 팔든 신고할 책임이 없죠.
이렇다 보니 소속사들은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예매된 티켓을 일일이 확인하며 강제 취소하기도 합니다. 자체적으로 '암행어사 제도'도 운영하는데요. 온라인상에서 암표를 발견하고 소속사 측에 신고하면 해당 티켓을 강제 취소하고 제보자에겐 혜택을 주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팬들이 되레 억울함을 호소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한 아이유 팬은 개인 SNS에 "친구가 아이유 콘서트 용병(티켓팅을 대신 해주는 것) 해줬는데, 좋은 자리 잡아서 뿌듯"이란 게시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누군가가 소속사에 신고하면서 의심을 샀는데요. 해당 팬은 부정 거래가 아니라는 걸 소명하기 위해 신분증과 티켓 입금 내역, 공식 팬클럽 카드, 친구와의 대화 내용 등 소명 자료를 소속사에 보냈고, 이후 공연 관람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공연 당일 불거졌습니다. 피해자는 공연 당일 현장 스태프로부터 추가 본인 확인을 요청받았고, 그 자리에서 다른 서류를 제출했지만, 입장 불가와 팬클럽 영구 제명이라는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금전이 오가지 않은 지인 예매조차 부정 거래로 정의한 소속사엔 비판이 쏟아졌죠. 해당 팬이 예매했던 좌석을 소속사 측이 재판매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습니다.
결국, 소속사는 "모두가 개선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는 만큼 더 나은 방안 마련을 위해 당사, 멜론티켓, 공연팀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겠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취지로 해명했는데요. 이 해명은 몸이 불편해 스스로 예매가 불가능한 이들을 예매 대상에서 배제한 셈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법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대중문화계에선 입법 혹은 형사 시스템에 기대지 않고 자체적으로 암표에 대응하는 움직임도 포착됩니다. 가수 장범준은 현대카드와 손잡고 블록체인 기술 등을 활용해 대체불가토큰(NFT) 티켓을 발행했습니다. 본인 인증된 이용자만 구매할 수 있으며, 재판매할 수 없습니다. 1인 1매, 월별 1회만 구매할 수 있고요. 좌석은 현장에서 랜덤으로 배정합니다. 또 본인 확인이 되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능하죠.
업계에서는 대안을 제시하기 전에 '암표'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아이유 콘서트 강제 취소 사례에서 봤듯 금전 거래 없이 남이 예매해준 행위도 부정 거래로 볼 것인지, 정가 이상 판매하면 암표인지, 티켓 판매처 이외의 플랫폼에서 거래되면 암표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게 현실이죠. 암표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친 뒤 대안을 내놔야 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