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역폭메모리(HBM)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동조화를 깨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증시의 반도체 쏠림현상은 변하지 않았으나 세계 증시의 AI(인공지능) 랠리를 주도하는 미국 엔비디아에 SK하이닉스가 HBM을 독점 공급하게 되면서 삼성전자 대신 엔비디아와 동조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지난 4월엔 두 회사가 함께 주가가 오르는 듯 싶더니 최근 삼성전자는 7만 원 초반대로 주저앉았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오히려 장중 ‘20만 닉스(SK하이닉스 주가 20만원 대)’를 돌파하면서 오랜 기간 이어왔던 동조화 관계에 안녕을 고했다.
두 회사를 갈라놓게 된 HBM은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 대비 데이터를 훨씬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만든 반도체다.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하는 AI 시대의 핵심 부품으로 떠올랐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이 분야에서 삼성전자 대비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SK하이닉스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미국 나스닥을 이끄는 엔비디아의 핵심 공급사로 떠오르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올인’ 수준의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다. 5월 한달간 외국인은 SK하이닉스를 1조5088억 원 사들였다. 2위 HD현대일릭트릭(3371억 원)과는 약 1조2000억 원차이가 날 정도다.
반대로 순매도 순위를 보면 1위는 삼성전자가 차지하고 있다. 무려 2조5810억 원 규모 순매도다. 사실상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비동조화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장악력은 공고해보인다.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글로벌 점유율은 53%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GPU 제품인 H100에 4세대 HBM인 HBM3를 독점 공급할 뿐 아니라 2분기 출시할 예정인 GPU B100에도 5세대 HBM3E를 공급할 예정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HBM 공급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아직 납품 성공 소식은 전하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 지난달 24일 한 외신에서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HBM 품질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보도하면서 주가 하락이 계속되는 중이다. 불과 몇 년 전 ‘업계 최초 양산’ 타이틀을 유지하던 회사가 오히려 SK하이닉스를 쫓는 형국이 됐다.
다만, 삼성전자의 HBM 분야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급 가능성이 아예 사라진 것이 아니며, 특히 폭발적 HBM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선 엔비디아도 SK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가 HBM 공급망에 들어와 주길 바랄 것이라는 시각도 나오기 때문이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AI 수요 확장 속에서 HBM 공정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진 데 따라 공급이 부족해졌지만, 삼성전자의 경쟁사들의 단기적인 추가 대응 여력에 한계가 있다”며 “HBM 공급 부족 상황은 삼성전자가 이 시장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높이는 요소”라고 말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도 “최근 삼성전자 HBM 제품에 대해 난무하고 있는 추측성 보도들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면서 “HBM3와 HBM3E 모두 엔비디아의 품질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