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외에 주주까지 확대하는 것은 국내 회사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0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의뢰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전제로 하는 이사의 충실의무 인정 여부 검토’ 연구용역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현행법 체계상 이사가 회사 외에 별도로 주주에 대해 충실 의무를 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상법상 이사는 주총 결의로 회사가 임용한 회사의 대리인이다. 이사의 보수 역시 정관이나 주총 결의로 회사가 지급한다. 민법 및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가 위임계약을 맺은 회사에게만 한정되는 이유다.
이사의 충실의무에 따르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현행 조항엔 이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는 명시되어있지 않다.
권 교수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까지 확대할 경우, 주식회사의 기본원리인 자본 다수결 원칙 및 회사와 이사 간 위임관계 훼손 등 국내 회사법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에 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신설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사는 대주주(혹은 지배주주)와 소수 주주 사이 상충되는 안건에 대해 인원이 적은 대주주가 아닌 주식 수는 적어도 인원이 많은 소수 주주들을 위한 의사 결정을 해야한다.
예를 들어 소수 주주들이 배당 확대나 당장의 이익 분배를 요구하고, 지배주주나 대주주는 이익 유보를 원하는 상황이 발생할 시 이사는 소수 주주들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수 주주들로부터 충실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손해배상소송을 당할 수 있게 된다.
권 교수는 “개정안의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라 함은 대주주와 소수 주주의 뜻이 달라도 이사가 소수 주주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해야 된다는 뜻으로 읽힌다”며 “이렇게 되면 소수주주가 누리는 이익이 이들의 주식 지분보다 과대평가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하는 경우는 해외 입법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미국 모범회사법과 영국, 일본, 독일, 캐나다 등 주요국의 회사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에 한정된다고 봤다.
일부에서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을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가 포함된 근거로 제시한 바 있으나 이는 회사 이익이 곧 주주 이익이라는 일반론적 문구에 불과하다는 점도 보고서는 지적했다.
권 교수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장은 현실화시킬 수 없는 이상적 관념”이라며 “이를 상법에서 강제할 경우 회사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경영 판단을 지연시켜 기업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고 말했다.